[오피니언리더] 사람의 겉마음과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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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옷은 다림질하면 되고 찢어진 옷은 꿰매면 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번 마음을 접으면 좀처럼 펼 수 없고 한번 마음이 찢기면 수선하기 힘들다. 구겨진 마음은 돌이킬 수 없고 찢어진 마음은 꿰맬 수 없으니까. 몸에 생긴 상처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말에나 행동에도 생각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당신을 흔들어도 좌절하거나 슬픔의 눈 뜨지 말고 하나님만 보고 가라. 

필자는 몇 달 전 책을 출간했다. 몇몇 분에게 책을 발송하여 출간소식을 알렸다. 책 한 권을 출간하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한다. 또 책을 발송하려면 상당한 수고와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책을 보내줘서 고맙다든지 축하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때는 서운한 감정이 든다. 저런 사람에게 왜 책을 보냈을까? 후회막급이다. 물론 몇 번씩 읽어보고 책 줄거리를 이야기하거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었다. 책 출간을 자기 일처럼 반갑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겪어보면 사람의 겉마음과 속마음은 많이 다름을 느낀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책이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로스는 근무하던 시카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로 뽑혀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매우 명예로운 상인데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발표가 나던 날 다른 교수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나를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상에 대해 말하는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나는 그들의 미소 뒤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무언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자 아동심리학자인 동료교수가 멋진 꽃다발을 보내 왔습니다. 카드에는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사람만큼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운 이에게 축하받지 못하면 서운하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축하를 한다는 건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다. 축하하는 마음은 일정부분 부러운 감정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내면에서 그 감정을 인정할 때 진심어린 축하가 나온다. 그러므로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축하한다’는 말은 참으로 성숙한 말인 듯하다. 

평소 어두운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다면 상대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음을 알았다. 필자는 바른 소리를 잘한다. 젊은 때 기자 시절 생긴 습관이다. 내가 판단할 때에 틀리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나 어디서나 거침없이 하는데 나처럼 하는 게 속해있는 조직과 주변사람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와 교계에 피해가 가더라도 바른말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이게 우리 교회와 교계, 내 친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하는 거다.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나라도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억지를 부려서라도 ‘잘못한 게 아니다. 잘한 거다’라고 얘기하면 결국은 해(害)가 된다. 정당하게, 냉정하게 자기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신뢰도가 높아진다. 

독일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포르셰를 설립한 이유로 ‘마음에 드는 차가 없어서 내가 만든다’고 한말이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카톡 대문에 걸어놨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비판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애국’이라고 했다. 비판하거나 때로 자기생각과 다르게 이야기를 한다고 미워하지 마라. 그러나 정에 약한 필자는 말은 강하게 하지만 마음은 여려서 남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절친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이 구절을 오늘도 암송한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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