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망각과 왜곡에 저항하기, 바르게 기억하기 : 기독 언론의 사명에 대한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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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는 나치에 의해 포위되었고, 남부의 작은 마을 르 샹봉(Le Chambon)도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그늘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작은 농장에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 후예들이었다. 어느 주일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함께 예배를 위해 모였고, 그날의 설교자는 앙드레 트로메이(André Tromé) 목사였다. 프랑스와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34년, 그 외진 마을의 작은 교회 목회자로 청빙 받아 사역하고 있었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폭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거짓과 폭력에 대해 저항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무에 대해 설교했다. 

1942년, 나치는 프랑스 전역을 점령했고, 당시 유대인을 숨겨 주는 것은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인들은 자기 집과 운영하던 기숙학교에 유대인을 숨겼다. 숫자가 많아지자 산에 움막을 지어 살게 했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은밀히 공급했다. 신분증을 만들어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의 피신을 도왔다. 목사를 포함해 교회 지도자 몇 명이 체포되어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대인 5천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전쟁 후 그 위험한 일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했고, 우린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행했을 뿐이에요.” 한국장로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으면서 개혁교회 전통에 굳게 서 있었던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세상이 진심으로 존경했던 모습을 우리가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200여 년 동안 모진 박해를 당했던 위그노를 가두는 감옥에는 문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단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그들은 위그노 신앙을 포기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정신과 저항 정신이 아닐까?

미국 듀크대학 찰스 캠벨 교수는 르 샹봉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죽음의 권세가 만나는 극적인 자리”였고, 그것을 ‘당연히 수행해야 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던 것은 그들 속에 형성된 덕과 성품(character)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스도인의 덕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진리를 수호하려는 위그노 전통 위에 굳게 서서 말씀과 예배를 통해 실천의 동인을 공급받았다. 그래서 주님은 기억을 명하신다. 예배 절기와 안식일 준수 명령은 기억 명령이었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 그 자체가 세상과 다르게 살겠다는 일종의 저항의 행위이다. 주님께서 성찬 예전을 세우신 다음, 그것을 ‘행하라’는 성찬 명령도 결국은 기억 명령이었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주장대로 “바르게 기억하기”(remembering rightly)가 중요하다. “진실하게 기억해야 할 의무는 근본적으로 정의를 행할 의무이며, 진실하지 않게 기억하게 되면 그 기억은 그들의 악행을 변형된 형태로 연장시킨다.” 개혁교회 신앙은 거짓에 대한 저항, 잘못된 권력과 가치관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엄밀히 말해 신앙은 망각과 싸우는 것이며, 진리를 왜곡하려는 거짓 시도와 싸우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왜곡과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판이, 언론이, 마케팅 현장이 그렇다. 심지어 진리의 수호자여야 할 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민족과 함께, 교회와 함께, 복음과 함께 달려온 122년 전통의 장로회신학대학교도 지난 몇 년 동안 왜곡과 거짓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에 ‘동성애 프레임’을 씌워 ‘무지개 신학교, 무지개 총장’이라는 거짓을 서슴없이 유포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총장직을 시작하면서 그런 기도가 절로 나왔을까? “주님, 이 어려운 때, 주의 사역을 바로 감당할 일꾼들을 키우는 일에 더 전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학교와 총장실의 에너지가 다른 곳에 쏟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드린 기도였다. 

‘쓴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쓴 시인’ 김영랑은 “거친 들 이리떼”와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는” 일제 강점기, 살에 새기고 피로 찍어 쓰듯 쓴 시를 통해 자신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다. 그때 그 캄캄한 민족의 밤에 세워지는 역사가 이어졌다. 기독언론의 사명은 왜곡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바른 정체성과 삶의 실천을 세워가는 것이며, 거짓에 저항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본질로 끊임없이 회귀하도록 돕는 것이다. 

김운용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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