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 – 기독교와 한국사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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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50주년을 기념해 감사예배 및 김형석 교수 초청 특강을 지난 7월 27일 진행했다. 김형석 교수가 ‘기독교와 한국사회’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내용을 3회에 걸쳐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모범이 되어 신앙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

저는 30대 초반에 연세대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교회가 중심이고 교회가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모체니까 교회를 중심으로 우리가 자라나 목사님이 되는 것도 좋지만 세브란스 병원 같은 것도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기독교 교육이나 기독교 병원이나 공동체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학을 공부할 목사는 아니지만 교육,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됐습니다.

중학생 때 그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경 말씀을 이렇게 쭉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한 말씀이나 교회에 대한 걱정은 하실 일이 없습니다. 뜻밖에도 모든 신앙이 교회에서 시작해서 교회로 끝나는데 예수님 말씀에는 교회 얘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예수님 말씀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건 교회를 뿌리로서 우리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가 변해서 민족 국가가 하늘나라로 바뀌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구나 그 생각을 좀 더 하게 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문제가 있는데 크리스천이 됐다 신앙을 가졌다 하는 것은 교회에서 출발해서 뿌리가 생기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을 깨닫고 일은 사회에 나와서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 같은 사람은 그런 위치입니다.

그러면 사회 나와서 일하게 되면 어떤 반응이냐 하는 건데 제가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교회를 통하고, 기독교 신앙을 교회 안에서 배우고 깨닫지만 교회 밖에 나오게 되면 저와 같이 의사라든지 의원 등이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인가. 가장 인간다운 삶을 갖지 않냐 누가 보든지 모범이 되고 누가 보든지 저렇게 살아야 하고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신앙을 가져야겠다 신앙이 필요하고 신앙인이 돼야겠다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 교육계면 교육계, 무슨 정치계면 정치계에서 나와 일하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저분은 우리하고 좀 다르다 언제나 모범이 되고 보람있게 산다 우리하고 뭐 다른가 아 그 차이였구나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니까 그랬구나. 그러면 목사님들은 설교를 통해서 전도하지만 우리 평신도들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모범이 됨으로써 신앙을 전하는 것 그것이 대단히 소중합니다.

제가 연세대학교에 있을 때 이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교수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저는 서양이 전해지니까 기독교하고 관계가 많은데요. 그분은 3년쯤 같이 있다가 나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성균관 대학에도 있다가 이제 연세대학교를 왔는데 연세대학교 와서 이렇게 쭉 살아보니까 교수님들 가운데 서울대학이나 성균관대학에서 볼 수 없던 교수님이 세 사람은 꼭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좀 이상해서 누가 그렇게 됐느냐 그랬더니 한 사람은 도서관 학과의 교수인데 노량진교회의 장로입니다. 또 한 분은 고고 수학 영문학을 하시는 분인데 그분은 교회를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서학자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정말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진 분입니다. 이제 그런 분을 얘기하면서 다른 대학에 없었던 사람들이 연세대학교 와보니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직장에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부분이구나 부족하지만 이제 우리를 통해서 저분 안에 예수님이 같이하시는구나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연세대학교이다 보니 목사님도 많이 계시고 신학 교수님도 많이 계시는데 우리 의과대학의 교수님들은 퇴근하기 어렵게 일하고, 주말이 되면 또 지방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오고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고 저런 분이면 내가 따라가겠다 저런 분의 얘기면 내가 듣겠다 그런 사람이 크리스천이라고 느꼈습니다.

30대 중반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됐습니다. 70년 전입니다. 옛날입니다. 그때는 우리 교수님들이 다 인생을 두 단계를 살았던 때입니다. 철학 계통의 한 원로 교수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고 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흑판을 향해서 30년, 흑판을 등지고 30년 사니까 내 인생이 끝났다 그랬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수님들은 30년 동안은 학문에 배운 학생 생활하고 30년 동안은 교수 생활하니까, 흑판을 쥐어놓고 살았으니까 이제는 인생의 한 단계가 끝났다 생각했고, 정년 퇴직하게 되면 가정에 돌아가서 생활하는 두 단계로 살았습니다. 교수님들만 그런 게 아니고 사회 모든 사람들이 이제 그렇게 두 단계로 살던 때입니다.

‘계란 노른자 같은 60-70대’

나도 우리 선배 교수가 회갑이 되고 정년이 돼서 은퇴했을 때에 하면 나도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을까 은퇴할 때까지 좀 건강하게 일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게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25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내가 회갑이 됐습니다. 나는 회갑이 되면 다 늙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늙는 건 없어요. 모든 점에서 늙은 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늙은이 취급을 하고 그래요.

우리 후배 교수들이 며칠 전에만 해도 학교에서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인사하던 교수들이 회갑이 됐다고 하니까 인사가 달라져서 옆에까지 찾아와서 “건강은 괜찮으시죠?” 그러기도 하고요. 자꾸 늙은이 취급을 해요. 그래서 정년까지 남은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내가 책임을 감당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정년이 되고 이제 학교를 떠나게 됐습니다.

사회 공간은 없어지고 가정 공간으로 좁은 공간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죠.

대학에서도 이제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다고, 원로교수, 명예교수가 되셨으니 쉬시라고 보내는데, 그 이야기를 가만히 보게 되면 좋게 말하면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뜻인데 이게 어떻게 말하면 ‘이제 늙어서 필요가 없으니까 학교를 떠나십시오’ 그런 얘기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절교하다시피,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게 연세대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이제 우리 철학과 중심으로 성별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볍게 그랬습니다. 나 오늘 늦둥이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졸업생은 밖에 나가서 일하게 돼 있다고. 내일부터 열심히 밖에 나가서 일하게 되겠는데 함께 좀 일하자는 거죠. 그리고 이제 학교를 떠나서 이젠 대학이라고 하는 그 공부가 그 밖으로 나왔습니다.

‘정신적 성장, 80까지 할 수 있어’

공부도 더 많이 계속하고요. 또 대학에 있을 때 못했던 것도 좀 더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까 좀 더 책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많이 좀 쓰게 되고요. 사회 공간이 오히려 좀 넓어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철학과 교수로 평생에 책 네 권은 쓰겠다고 하는 그 욕망이 있었는데 한 번은 대학에 있을 때 했었고요. 한 권은 대학 떠나서 70대 중반쯤 돼서 완성됐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했던 것도 대학에 있을 때보다는 밖에 나와서 이루어진 거죠. 그리고 사회의 넓은 공간에 나오니까 대학의 강의는 후배들한테 맡기지만 기업체라든지 공무원이라든지 공관이라든지 이런 데 강연도 좀 많이 나가게 되고 또 독자들이 많이 생기니까 이제 저서도 좀 많이 나가게 됐습니다. 사회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일에 결과도 더 크고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15년 동안을 일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이제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이 이제 다 가정으로 돌아가고 내 가까운 친구들은 나하고 비슷하게 살았으니까 사회 활동도 여전히 좀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76세쯤 됐을 때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는데요. 정년퇴직한 교수들이 모임이 있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영문과의 어느 후배 교수가 이번에 회갑이 됐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같은 영문과 출신 교수가 그 얘기를 듣더니 저 친구가 철도 안 들었는데 회갑부터 됐다고 그래요. 저도 생각해보니 나도 회갑이 됐다고 늙은 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이제 철이 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사회에서 회갑이 됐으니까 뭐 늙었다 그래도 인생이 철드는 건 그때나 돼야 철드는데 그랬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얘기인데 우리 철학과의 정석회 교수님을 모시고 내가 어디 좀 가게 됐습니다. 차 타고 뒤에 둘이 앉아서 이렇게 가고 있는데요. 그때 그 어른이 92세인가 93세인가 그랬습니다. 아주 선배입니다. 날 가만히 보시더니 요즘에 연세가 어떻게 됐더라 그래요. 그래서 76세입니다. 그랬더니 아무 말씀도 안 해요. 가만히 있다가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혼자 하시는 말씀이 “좋은 나이올시다” 하셨습니다.

구십이 넘어서 생각해보니까 76세가 얼마나 좋은 나이입니까. 그때 내가 느끼기엔 나도 이제 구십이 되면 70대가 그렇게 좋은 나이인데 어서 나이가 들면 안 되겠다 생각했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82세쯤 되지 않았는가 지금 기억하는데요.

나하고 비슷하게 같이 산 가까운 친구인 우리 안병호 교수님, 김태길 교수님이 있습니다. 우리가 동갑입니다. 그리고 이제 50년 동안 철학 분야에서도 이제 비슷한 분야를 함께 하고 정말 아주 좋은 친구들입니다. 좀 여유 있는 시간이 돼서 한 분을 만나서 얘기하게 됐는데요, 80이 넘도록 살아보니까 계란은 노른자위가 있어서 병아리도 낳고, 계란도 낳는데 인생에도 계란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것 만큼 보람 있는 좋은 나이, 그런 나이가 있긴 있었을 텐데 그게 몇 살쯤이었을까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50쯤 되면 일을 많이 합니다. 일을 많이 하지만 성숙한 인간으로 내가 나를 믿고 살 만한 나이는 잘 안 됐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고 또 후배들한테 존경도 받을 수 있고 또 사회에 대해서 지도자가 될 만한 자격도 갖추는 것이 가능한 좋은 나이입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성장이 끝나면 늙는 거고 성장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이 늙으면 인간도 성장이 늙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입니다.

우리 신체는 여성들은 22살 남성들은 24살까지가 성장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이제 성장을 못하고 쭉 연장하고 40대로 이어집니다. 누구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건 그건 20대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40대까지는 누구나 성장하게 돼 있고요. 더 올라가길 원하는건 자기 책임입니다.
그럼 이제 60부터 몇 살까지 성장했는가 우리 셋이 뭐 이것저것 다 따져보니까 그래도 60에서 75세까지, 80세 가까이까지는 성장했다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김태일 선생님 한국인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좋은 책을 썼는데 76세에 나왔거든요. 나도 내가 하고 싶었던 책은 다 70대 중반 후반에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나 60에서 75세까지는 성장한다 그러면 계란에서 노른자에 해당하는 나이는 몇 살인가 60에서 75세다 그때가 제일 좋은 나이였다 생산적이고 성장하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제일 좋은 나이였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80세가 남았으니까 앞으로 어떡하지 생각했죠. 이걸 얼마나 연장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언제까지 연장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잘 가면 90까지야 가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90까지는 연장해보자 얘기하고 우리 셋이 항상 함께 열심히 일하고 서로 격려하고 지냈는데 김태길 선생은 90세를 조금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 쭉 일했고요. 안병옥 선생은 93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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