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구조 속에 그것을 다스리는 것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양심’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규범, 법, 규약, 규칙들이 있다. 과연 그 속에서 우리가 늘 선포하는 ‘복음적’이라는 것은 우리와 세상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고 있을까?
기독인들이 ‘말씀 중심’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인가? ‘교회중심’ ‘목회자 중심’일까? 아니면 ‘하나님 중심’일까? 성경은 66권의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이를 선포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입장에서 성경의 지식으로, 알레고리적으로, 교훈적으로, 조직 신학적으로, 구속사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선포한다. 그러면 그 속에서 ‘복음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적’으로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적으로 산다든지, 판단한다든지 할 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복음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처럼은 무엇인가?
첫째, 자기 부인이다. 이것의 정점이 십자가이다. 우리의 자기 부인은 십자가 안에서의 자기 부정(Self-denial in the Cross)이다. 십자가 밖에서의 자기 부정은 있을 수 없다.
둘째,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안에 거하는 것이며 말씀이 내 안에 머물러 나를 이끄는 것이다. 이 주안에 거함(Self-dweling in Christ)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알게 하는 것이다.
셋째, 분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옳다, 아니다’를 제대로 해야지 이것이 잘못되면 죄가 된다고 하신 분별(Self-discernment)하는 것으로 복음적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넷째, 헌신(self-dffering)이다. 헌신 속에는 ‘자기’가 없다. 자기 유익, 주장, 고집, 아집, 편견이 없다. 오직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만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복음적인, 예수 그리스도적인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한가?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많은 문제들이 있다.
사회, 정치, 교육, 문화… 심지어 교회, 노회, 총회 그리고 많은 선교단체, 연합기관들 모두는 복음 앞에서 복음적인가를 물어야 한다. 과연, 이 복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는가?
팀 켈러는 “The Gospel changes everything.”(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을 그의 목회와 설교에 핵심으로 삼고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복음은 단순히 인간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땅위에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동기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우리는 복음적인가?”를 묻고 그 복음이 나를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우리를 성장시키는가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래서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복음으로 치유하는 교회’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것을 진심으로, 진리의 근거로 외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