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부원병(夫源病)이란 말이 있다. 남편 때문에 아내들이 앓게 되는 가슴앓이다. 특별히 남자의 은퇴는 아내에게 짐이 되고 두통거리가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엄처시하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 시중에는 처국(妻國)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 처하태평(妻下太平) 인명재처(人命在妻) 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엄처시하에 사는 두 남자가 만나 서로 서글픈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들 뺨에는 새파랗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한 사람은 자기 아내가 동창회에 다녀오더니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했다. 동창회에 가보니 동기생들은 남편이 죽어 다들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남편이 살아있어 힘들게 한다며 아내가 구박하고 때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남자는 아내가 곱게 단장하고 외출하기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가 볼때기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고 했다.
은퇴한 남편들이 설 자리가 없다. 추락하는 남자의 위상을 풍자하는 개그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일 놓자 숨 놓는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일이 전부였던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면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낀다. 은퇴 후에 초조함이나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유다. 은퇴 후 크레바스(crevasse) 기간을 지나는 일종의 심리적인 공황기를 겪는 것이다. 일이 전체였고 목표였는데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은퇴 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백발이 되거나 폭삭 늙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찍 숨을 거두기도 한다. 은퇴 후 극심한 부부 갈등으로 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은퇴 증후군을 앓는 남편과 달리 아내들도 R.H.S(Retired Husband Syndrome), 즉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열병을 치르게 된다. 은퇴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 때문에 아내가 겪는 스트레스나 심신의 피로, 우울증 같은 증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외로움을 느끼는 쪽은 남자다. 여자는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면서 점차 중성화를 지나 남성화된다. 젊었을 때와 달리 대담해지고 터프해진다. 나이가 들면 여우같던 아내도 곰이되고 호랑이로 변한다. 반면 남자는 점점 기백이 사라지고 소심해진다. 젊어서 아내를 호령하던 기세는 사라지고 호랑이 같은 아내에게 ‘깨갱!’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젊었을 적엔 전권을 휘두르고 살던 나도 이제는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설거지를 도맡는다. 늙어서 구박받지 않으려는 생존전략이자 노후 대책이다. 한마디로 일찍 주제 파악을 한 것이다. 목표지향적, 일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이 긴 노년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가? 힘차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은가? 아니, 구박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가? 남자목숨은 아내에게 달렸다.
지금,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빨리 주제를 파악해라. 볼때기에 피멍이 들지 않으려거든, 아니 노후 생존을 위해서 배우자한테 목숨을 바쳐라.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