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울어야 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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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다. 웃을 때는 잠깐이요 울 때는 많다. 사람은 언제 우는가? 우선 고독할 때 울고 싶어진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엄습할 때 눈물이 나며 아무도 내 속마음을 몰라준다는 고독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고독한 자에게는 돈도 명예도 필요 없다. 자기를 알아주고 곁에 있어줄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정(情)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사람은 희망이 없을 때 울고 싶어진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다. 희망이 있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면 현재의 고난은 이기고도 남을 수 있다. 문제의 해결에 끝이 보이지 않고 불투명한 미래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때 사람들은 울고 싶어진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을 빼앗길 때 사람은 울게 된다.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도 없을 때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수 있다면 가난해도 웃을 수 있고 초가삼간도 천국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사랑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으며 사는 존재이다. 사랑 없음에 눈물 흘리며 거짓 사랑에 상처받는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은 많으나 관계성이 없는 시대이다. 사람은 많으나 고독한 군상(群像)들의 그림자 뒤에 남긴 눈물 자국들이 거리마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즐비하다. 전깃불은 밝아졌으나 인간관계는 어두워져서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또한, 현대는 말은 많으나 희망이 없는 시대이다. 거짓된 희망의 메시지를 반복하는 정치가들은 양치기 소년보다 훨씬 더 뻔뻔스럽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혼란과 불안과 절망 속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특징은 사랑이 없는 시대이다. 이기적인 사랑만이 판을 치고 있고 그 사랑에 속아서 눈물짓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들이 널려있다. 

잘못하고도 반성이 없는 뻔뻔스러운 위정자들의 얼굴에 국민에 대한 섬김이나 두려움이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 울고 싶다. 밥 먹듯 거짓을 말하고, 대놓고 불법을 행하며 자기 합리화에 세치 혀를 놀리는 인간들 속에서,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왕따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사회 분위기가 울고 싶어진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근심이 절망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보며 울고 싶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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