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말씀을 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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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유머.

대한민국 사람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습관처럼 “죽겠네, 죽겠네”라고 말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바로 “주께 있네, 주께 있네”하는 말이랍니다.

공감이 갑니다. “죽겠다”는 말보다 “주께 있네”라는 말이 몸과 정신을 훨씬 건강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혀에 베인 상처는 영원히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서툰 칼에 다치면 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좋은 말은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방패가 됩니다. 

-365 유머 넘치는 긍정력 사전에서-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 26:2).

오늘 본문을 창 12:10과 연결하여 보겠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기록이 되어있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 결과는 아브람의 후손들의 430년 노예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아들 이삭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둘 뿐 아브람의 혈통을 타고 들어온 악한 영은 그 아들 이삭에게도 동일한 환경의 결과에 노출시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창 26:1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민수기에는 아비의 죄를 삼사대의 자식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이 말씀을 상고하면 우리는 절망입니다. 이 절망의 고리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절망의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할렐루야~할렐루야!

주님의 십자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 사하신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심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것, 그리고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은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창 26:12). 할렐루야 우리에게도 이삭에게 허락하신 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받으세요. 그리고 그 믿음의 말씀의 씨를 잘 관리하여 얻어지는 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창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할렐루야 그런데 더 큰 복이 이삭에게 주어집니다. 

창 26: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비멜렉과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화친을 맺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회복이 되니 이웃들과의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관계의 회복입니다. 환경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환경을 보지 마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세요. 우리의 살길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한상윤 목사

<총회부흥전도단 총무, 은혜의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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