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직자의 의무(De offiiis ministrorum)

Google+ LinkedIn Katalk +

‘성직’ ‘성직자’는 아주 흔하게 들려지는 것이다. ‘성직’은 말 그대로 거룩한 직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룩함’이라는 구별된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런 구별된 직책을 맡은 자를 ‘성직자’라고 부른다. 우리 교단에서는 한 때 “장로는 성직이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어 꽤나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넓게 생각하면 모든 성도는 성도로써 영어의 표현에 ‘Saints’로 보면 모두가 성직자이고 직분을 구별해서 직제로 이야기하면 거룩한 직책을 구별하여 맡은 자가 성직자이다. 

이 성직자가 되는 조건이나 성직자의 의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될 것이 바로 ‘성직자의 의무’이다. 지금 다양한 것이 많이 요구되는 시대 앞에서 성직자의 의무 역시 매우 다양하여 성직자는 ‘팔방미인’이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고 다양하지만 성직의 거룩성과 책임성을 생각할 때 성직자의 진정한 의무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오늘까지도 기독교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인 암브로시우스가 <성직자의 의무>라는 책을 썼고 그 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보완했는데 여기서 성직자의 의무는 시작부터 끝까지 ‘올바름과 이로움’으로 설파하고 있다. 너무나 단순한 논리이며 의무이다. 

이 글에서 서술할 수 없지만 먼저 ‘올바름’을 이야기 한다면 ‘올바름’은 우리가 늘 말하는 ‘의(義)’를 말하는 것으로 ‘올바름’은 곧 ‘의로움’이다. 또한 ‘이로움’이란 ‘이(利)로써’ 이롭다 “이익이 된다”는 것이며, 이 올바름과 의로움이 소위 의리(義利)가 되는 것이다. 과연 이 의리가 어떤 것인가? ‘의’와 ‘이’, ‘올바름과 이로움’은 서로 대립 되거나 상치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할 성직자의 의무가 있게 된다. 암브로시우스가 <성직자의 의무>라는 책을 낸 것은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을 위한 첫 ‘윤리교과서’로 까지 평가받는데 여기서 주장한 것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첫째, 올바름과 이로움을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둘째, 참으로 올바른 것은 이로운 것이며, 셋째, ‘올바름’에 어긋나는 것은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넷째, 그러기에 ‘올바름’과 ‘이로움’은 서로 상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의미의 ‘이로움’은 언제나 ‘올바름’(의로움)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로움이란 개인의 이익이나 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건한 사랑, 그리스도의 마음에 관련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비우고, 낮아지고, 종이 되고, 죽음으로 순종하여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약속해주신 이로움이기에 올바르지 않을 수 없는 ‘의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것은 이롭고, 이로운 것은 올바른 것이다” 한마디로 참된 올바름과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이로움이고, 이로움은 올바름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말 같지만 모든 성직자와 그리스도인은 이로움보다 올바름을 앞세워야 하고, 올바름은 이로움에 앞서고, 이로움은 올바름을 뒤따라야만 한다. 따라서 불법, 편법, 탐욕, 교만은 올바를 수도 이로울 수도 없는 것이다. 

108회 총회가 우리에게 올바름인가? 이로움인가? 올바름을 뒤따르는 이로움인가? 소위 총대들은 교회의 대표적 성직자들인데 이 ‘성직자의 의무’를 되새기면서 ‘올바르고 이로운 총회’를 이루어 교회의 치유와 자정능력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영택 목사

<증경총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