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교회 김희선 장로님과 조병해 장로님이 지난 현충일을 앞두고 보훈부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에게 선사한 제복을 받으셨다. 두분 다 1932년생으로 김 장로님이 한달 먼저 나셨다. 조 장로님은 ‘켈로 부대’로 알려진 Korea Liaison Office 소속으로 적 후방 교란작전을 지원하셨고 김 장로님은 일반 육군 전투부대원으로 복무 중 휴전을 맞이했다. 두 분이나 참전용사를 교회 선배로 모시는 것이 자랑스러운데 두 장로님은 후덕한 성품과 겸손한 몸가짐으로 이미 성도들의 뚜렷한 귀감이 되시었다. 두 분을 뵐 때 “멋있는 베이지색 참전용사 제복을 입고 주일예배에 나오시라”고 권유하면 그냥 미소만 지으시는데 쑥스러워서 그러실테다.
젊어서 교회에 처음 나올 때부터 우리에겐 본받고 싶은 선배들이 계셔서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 잘나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선배는 학과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만큼 우리에게 학창의 보람을 나누어 주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직급을 떠나 능력 있고 행실이 반듯한 선배가 있어 보고배우는 바가 컸다. 책에서 배우는 것이 평면적이라면 바로 앞의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은 입체적이요 전인격적이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에서 태릉 교정 종합강의동 앞에 훌륭한 선배 군인들의 흉상을 세워 장래 군 지휘관이 될 자원들이 드나들면서 이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애국애족의 헌신을 다짐하도록 했을 것이다.
자세한 선정 경위는 모르겠으나 6.25전쟁 3년간 우리 군이 배출한 영웅적 존재들에서 찾는 대신 20세기 초 국권상실 후 광복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한반도 밖에서 일본군을 대적한 무장투쟁으로 공을 세운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 이회영 그리고 홍범도 장군을 나란히 모셨다. 이들 중 1920년대 레닌의 소비에트 공산당에 가입하여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선물로 받은 사실을 뒤늦게 문제 삼아 홍범도의 흉상을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기로 한 육사의 결정을 놓고 정치계가 찬반으로 나뉘어 우리사회의 불협화음이 증폭되고 있다. 당초 이들 독립운동가들을 육사생도들이 군인으로서 가장 우러러보아야 할 인물로 삼은 것은 옳은 생각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국광복에 몸바치고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실제 총검을 들어 적군을 무찌른 공적은 길이 기념해 마땅하다.
윤봉길 의사가 예산 집을 나서며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편지의 글은 우리의 독립운동 선진들의 뜻을 온전히 보여준다. “너희는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꼭 해야 할 일을 하고자 너희들을 떠난다. 너희도 조국을 위한 전사가 되기 바란다.” 애국의 또 다른 길이라고 일제 체제하에서 출세하여 동족의 삶을 돕는 쪽을 택한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 이들의 희생정신은 얼마나 숭고한가! 비록 민족해방은 독립운동가들의 직접적인 일본제국주의 격파이전에 연합군의 승리로 이 땅에 찾아왔지만 우리 민족이 외적의 지배에 순종하는 백성이 아님을 이들은 넉넉히 세계에 과시했다. 이러한 인식에서 선진들에 대한 숭모의 표시는 시종함이 마땅하다.
2018년에 육군사관학교에 독립운동 선진들의 흉상을 세울 때 과거 행적 중 이념상의 유사점에 주목하여 누구를 선정하였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의 정치세력이 그 점을 문제 삼아 흉상을 다른 데로 옮겨라 한다면 이는 쓸데없는 데에다 정력을 낭비하는 짓이다. 우리의 피 끓는 육사생도들이 정치권의 시비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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