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선악과는 보암직했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였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정말 눈이 밝아졌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의해 밝아진 눈으로 그들이 제일 먼저 본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움을 보는 것입니다. 결국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육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뭔가를 하는데, 아주 엉성합니다.
육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엉성함이나 한계에 반하여 영의 눈을 뜬 사람의 초월적 은혜를 보여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군대와 이스라엘이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람군영에서 작전을 짜면 그 모든 상황을 이스라엘에서 알고 미리 준비하여 승리를 거두니, 아람 왕이 분명 우리 가운데 첩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왕하 6:12) 육의 눈을 가지고는 절대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 있습니다. 영의 눈이 밝아진 사람들에게 있는 영적 권능이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밝아져야 하는 눈은 바로 영의 눈입니다. 우리 육의 장막이 위 아래로 갈라지는 은혜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아람 왕이 병사들을 동원하여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에워쌌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그 장면을 보고 허겁지겁 엘리사에게 우리는 다 죽었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때 엘리사가 기도하여 그의 눈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환이 다시금 영의 눈을 가지고 보았더니 하나님의 군대가 온 산을 둘러 진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나를 둘러 진치고 있음을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눈이 밝아진 자들에게 임하는 영적 은혜입니다.
영적 눈이 밝아진 자들은 당당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니 육의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죄로 인해 육의 눈이 떠진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져야 하는 것은 육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인 것입니다. 영의 눈은 어떻게 밝아질 수 있을까요? 열왕기하 말씀에서 엘리사가 육의 눈으로만 살아가는 사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사환의 영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천군천사들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마음이 착잡한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세상적 근심의 눈은 주저 앉게 하지만 주저 앉아 있는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의 눈을 열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5)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의 육의 눈이 희미하고 영의 눈이 밝아지려면 하나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육의 눈이 밝아진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에 착안을 둔다면 영의 눈을 밝게 하려는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소통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상윤 목사
<총회부흥전도단 총무, 은혜의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