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료 선교사로 살아온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보니 오직 성령님의 역사만 보인다. 그동안 사역한 곳들이 의약품과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오지(奧地)였기에 상식적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졌다. 그때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것이 있다면 작은 믿음을 고백하고, 인생의 한 부분을 내어드렸을 뿐이다.
흔히 선교사는 특별한 부르심, 즉 소명(召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소명을 조금 일반화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소명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초청하신 사실이 바로 소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선교사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복음에 반응하는 것, 구원으로 초청에 반응하는 것이 소명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 소명에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소명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에 많이 감동한 사람일수록 더 헌신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누구는 “꿈에서 무엇을 보았다”라고 하면서 그것이 소명을 받은 증거라고 믿는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감당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라고 묻는 이가 종종 있다. 이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같다고 본다. 그러면 나는 “믿음 하나면 충분합니다”라고 답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다. 성경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 아니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 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하시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기적보다 더 큰 일은 바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나는 이 말씀을 가지고 몇 달을 묵상하면서 씨름했다.
‘대체 그 자격은 무엇인가?’ 그 결론이 ‘나를 믿는 자’였다.
선교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여건이나 자격은 없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다. 다른 말로 믿음이 선교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 실력인 것이다. 어떤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보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믿음이 철저하다면 다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많이 알고 많이 가졌다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은 첫째도 믿음이고, 둘째도 믿음이요, 셋째도 믿음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서 전도를 보낼 때,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신다. 제자들이 무슨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그분을 믿는 것뿐이다. 믿는 것도 목숨 걸고 철저히 믿는 상태는 아니다. ‘누가 더 크냐’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미숙한 믿음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처참히 죽으셨으니 얼마나 실망했을 것인가. 그러다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계시면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그들은 확실히 믿게 되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9)
필자 故 강원희 장로는 1961년 연세대의대를 졸업한 뒤 간호사였던 동문 부인과 함께 속초로 내려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을 개업했다. 그 후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간곡한 기도와 권유로 네팔 해외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후 방글라데시, 에디오피아, 명성병원 건립 등 40년 가까이 해외 빈민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의료선교에 전념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