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내가 사랑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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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셨다. 생존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먹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이다. 의료 선교가 다른 선교 사역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다. 사람이 아프면 가능한 대로 반드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이때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은 곧 그를 살리는 일이 된다.

배고파서 죽게 생겼을 때 먹게 하는 것은 필수다. 당장 안 먹으면 며칠 안에 죽는데 먹여서 살려줌으로써 느끼는 감사와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치료받아서 살았을 때 느끼는 감사는 다른 어떤 전문 선교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영혼의 죽음, 영혼의 배고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구술적인 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병을 치료받지 못하고 죽었다면 구술적인 복음도 전할 수 없다. 구술적인 복음을 받아서 영혼이 살기 위해서 먼저 육(肉)을 살려야 한다. 흔히 ‘전인(全人) 치료’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말로 복음만 전하는 것은 치료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절대 필요를 채워주는 과정에서 특별히 의료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나는 의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에 반대한다. 내가 하는 일이 복음 전하는 게 틀림없는데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했다가 최근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셔서 지금은 확신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하는 의료는 선교의 도구가 아니라 선교 그 자체이다.

예수님은 가르치고(teaching), 전도하고(preaching), 치유하는(healing) 사역을 동시에 하셨다(마 9:35 참조).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주님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하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구술 선교사가 말로 복음을 전한다면 의료 선교사는 의술로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복음의 메시지를 구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 선교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의사가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의술을 베푸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믿음과 사랑의 동기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료를 하느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의술을 베풀 때는 눈빛과 말과 행위가 예수 안 믿는 사람과는 다르다. 누구보다 환자들이 금방 안다.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위해서 하는구나.’

내가 지금 사역하고 있는 ‘한(韓)네팔 친선 병원’은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설립했다. 의사들도 대부분 코이카에서 파견 나온 국제 봉사요원들이다. 처음 부임했을 때 분위기가 아무래도 서먹한 점이 있었다. 의사들 사이도 그렇고, 원장과 현지 직원들 사이도 메말라 있었다. 나는 그저 인사를 열심히 하고, 성의를 다해서 환자를 봤다.

추울 때 환자들이 담요를 잘 덮지 않고 있으면 목 있는 데까지 잘 덮어주고, 한 겹이면 하나 더 가져오라고 해서 덮어주었다. 환자들을 위해서 하는 정성어린 행동을 환자 보호자들이 보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다 본다.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랑으로 섬긴다는 것은 뭔가를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작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부흥회 같은 모임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은혜를 받고, 안 믿던 사람들이 믿음을 결단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삶이라는게 은혜를 한번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성령님과의 교통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처럼 된다면 나도 예수 믿고 싶다!’ 하면 벌써 복음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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