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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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수확의 계절이 되었다. 11월 19일은 추수감사주일이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어 1907년 제4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의 의결로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116주년이 되는 셈이다. 시대가 변하여 현재는 많은 성도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에 거주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추수할 곡식과 과일과 소산물이 없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셨다. 때로는 환난으로, 때로는 질병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르시는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셨다.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니 평생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민초들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농사를 지어 수탈을 당하며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다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1945년 해방이 되었다. 정부 수립 후, 3년도 채 못 되어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과 북녘 땅은 교회가 폐쇄된 채로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세계의 도움으로 공산 치하를 면하여 자유와 평화와 번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심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감사를 잊은 채 살고 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의 믿음을 일깨워야 하겠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영국의 청교도(Puritan)들이 몇 가지 곡식의 씨앗을 싸 들고 메이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데서 시작되었다. 긴 항해 끝에 신대륙 미국의 동부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상륙해 첫 겨울을 지나고 나니 절반 가량만 살아남았다. 이듬 해 가을 첫 수확을 하고 보니 감격스러웠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그래서 출항했던 영국 항구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으로 이름을 정했다. 퓨리탄(Puritan) 마을이다. 3일 간 축제를 열었다. 경작 기술을 가르쳐 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를 표했다. 야생 칠면조(Turkey)요리, 옥수수 빵, 감자 요리, 호박 파이 등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고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 되었다.

한국 교회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 교회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폭풍 성장을 했다. 한국 사회에 공의와 양심의 중심축으로 등장했다. 한국 전쟁 후 외국 교회의 구호물자 도움을 받던 교회가 빈곤에서 벗어나 부유한 교회가 되었다.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앞에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참회의 고백을 드려야 할 때이다. 부해진 한국 교회는 세속화되고, 부패하고 사치하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가 안일함과 이기주의에 빠졌다. 개척에 성공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정년이 되자 남에게 승계해 주기 아깝다는 유혹을 받는다.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진다. 세상으로부터 비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는 찬반양론으로 분열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두려운 일이다. 부귀영화 앞에 믿음이 초라해진다. 능력을 잃고 있다. 

감사를 잃은 영혼은 능력이 없고 죽은 믿음이 되는 것처럼 감사를 잃은 교회는 능력을 상실하고 죽은 교회가 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 우리 자신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죽음과 멸망의 아골 골짜기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다. 365일 날마다 감사를 드려도 모자란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는 행태를 교회가 보일 수 있는가! 자신의 불의한 행위를 양심으로 인지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행하는 것은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다! 2023년 추수 감사절을 맞으며 한국 교회가 다시 새롭게 각성하고 참회하는 선한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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