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주렁주렁 감이 달려 있습니다. ‘까치밥’이라 불리는 이것은 수확기에 높은 나무 위의 과일을 전부 따지 않고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을 위해 몇 개씩 남겨놓은 것을 말합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나눔의 전통입니다. 농부들은 밭에 콩을 심을 때 반드시 세 알씩 심었습니다. 한 알은 하늘의 새가 먹고, 한 알은 땅속의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만이 농부의 몫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추수를 마친 들판의 벼 이삭은 가난한 이들과 배고픈 새들을 위해 일부러 줍지 않고 남겨 뒀습니다.
일제시대, 만주 벌판으로 쫓겨간 농민들이 맨손으로 일궈낸 논밭의 생산물을 세 가지 용도로 구분해 경작했던 삼전(三田)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는 군전(軍田),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세우는 데 사용하는 학전(學田), 나머지 하나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생전(生田)입니다. 이 일에 동참한 사람들은 이름 있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서민들이었습니다. 궁핍한 삶을 살아가지만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 것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서에도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출 23:11) 말씀합니다. 추수할 때 땅에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밭의 한 모퉁이는 남겨두라고 하십니다. 그 마을에 함께 사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겨진 이삭들을 자기 몫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 삶은 고단할지라도 수치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추수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여인이 과부요 타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정성을 다해 도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종들에게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곡식을 벨 때 밭의 모퉁이는 거두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룻을 불러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른 밭에 가지 말라 하였고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배불리 먹고도 남는 음식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룻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시어머니의 몫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추수할 때에 이삭을 남기도록 한 율법의 정신은 한 사회가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들을 품고 공존하라는 하나님의 섬김, 디아코니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우리의 마음에 선조들이 이웃을 위하여 베풀었던 까치밥과 삼전을 생각하며 참된 섬김을 실천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