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정문을 들어서서 우편에 위치한 100주년 기념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비슨 내한 130주년 기념 특별전시』는 이 학교와 관련을 맺었든 아니든 간에 한번 들러볼 만한 값진 행사이다. 이 특별전은 조선 개화 초기 1893년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들어와 1935년 귀국할 때까지 40여 년을 봉사하며, 특히 ‘1916년부터 18년간 연희와 세브란스 두 전문대학 교장으로 겸직하며 학교와 병원을 함께 발전시킨 Oliver R. Avison (1860~1956)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
에비슨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 병원인 제중원을 고종황제 시의였다가 주한 미국 공사가 된 알렌(Horace N. Allen)에게서 이어받아 세브란스병원으로 키우고 한국인 의사 양성을 위해 본격적인 의학교육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08년 6월 3일 세브란스병원의학교(Severance Hospital Medical College) 첫 졸업생 7명이 배출됐다. 이들은 졸업식 다음 날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아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가 됐다.
1915년 4월 종로 YMCA 건물에서 기독교 여러 교파가 협력해 만든 조선기독교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이 개교했다. 교장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였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듬해 10월 별세하자 에비슨이 CCC 교장을 맡았다. 이후 에비슨은 1934년 2월까지 18년 동안 (CCC에서 이름을 바꾼)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의 교장을 겸임했다. 그는 1934년 2월 연희전문과 세브란스의전의 교장직을 각각 원한경(Horace H. Underwood) 박사와 오긍선 박사에게 넘기고 1935년 12월 귀국했다.
에비슨이 1956년 8월 미국에서 서거한 이듬해 1957년 1월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합쳐 연세대학교로 새로이 출발했다. 전시회는 1935년 에비슨 박사 송별회 자리에서 윤치호 선생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연설문을 소개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세 개의 위대한 기관인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을 남겨주었습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당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장 위대한 기념물은 당신의 선행을 천배로 늘려줄 두 대학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출되는 졸업생과 병원의 치유 봉사로 혜택을 입게 될 환자들일 것입니다.”
(한 세기가 흘러 최근 파악한 국내 의사 수는 한의사 포함해 11만 명에 달하는데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 2.2명은 많이 부족하니 대폭 늘려야 한다는 정부와 절대 안된다는 의사협회의 대립이 어떻게 타결될지 궁금하다.)
연세대박물관 에비슨 특별전시회는 우리들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사적 공헌을 되새겨 준다. 그들은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워 한국인들의 영성과 지성과 육신을 돌보는데 진력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닦은 기초 위에 대한민국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땅에서 출생해 60여 년을 살아온 연세병원 국제진료소장 인요한(John Linton) 박사 같은 이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제는 이 나라의 정치발전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있다. 국민의힘의 혁신위원장으로 부름을 받아 각자 이익을 도모해 사방으로 뛰는 여당내 여러 인물들을 상대로 합심해 당을 일으키는 해법들을 제시하였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뿌리인 옛 선교사들의 정신에서 오늘의 활동에 도우심을 받고자 기도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의 노력이 이번에 당장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새로운 미래상을 살짝 보여주신 듯하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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