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진호가 죽었다고? 갸가 죽었단 말이지… 나 그놈 하고 꽤나 싸웠었는데…”
말끝이 흐렸다. 이제는 회갑을 지나 고희를 바라보는 인생 황혼기에 들어서 아들 며느리 손자들로 둘러싸인 이를테면 추장격인 사람들이다.
“야! 덕배야 너 정말 오래간만이다. 도대체 이게 몇 년만이냐?”
“그러게 말이다.”
이 자가 우리 반에 있었나 하면서도 우선은 대답을 했지만 어떻든 반가워하니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 장로로부터 사장, 명예교수, 변호사, 전직 은행지점장들이 모인 자리인데 어찌된 게 말끝마다 반말에다 ‘야!’, ‘너!’, ‘이놈’으로만 통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상을 찡그리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이래서 고등학교 동기가 좋은가 보다.
“야! 그때 그 하모니카 잘 분다고 으스대던 놈 있었지?”
“하모니카 잘 불던 애?”
“현일이지 김현일. 그놈의 하모니카는 대단했지. 야! 이제부터 군깡마취를 불 테니까 잘 들어! 하며 발로 장단 맞춰 불어댔지.”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들어 현일이가 신나게 불어대는 하모니카에 넋을 잃던 때가 벌써 반세기를 훨씬 넘는 옛날로 흘러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멋쟁이 현일이가 혈압인가 중풍인가로 고생 고생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고 만 것이다. 모두는 입에 맞는 대로 소주와 맥주잔을 몇 번이나 비웠다.
“야! 덕배야 넌 아직도 콜라냐?”
덕배는 웃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웃는 게 가장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너 따지고 보면 술도 하나님이 만드신 음료수인 거야. 알코올이 좀 많아 그뿐이지.”
덕배로서는 수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너 왜 이래? 덕배가 술 안 마신다고 네게 무슨 해로운 거라도 있다는 거야? 너 장로에게 그러는 게 아니야.”
“어쭈! 자기도 교회에 나간다고 역성을 드네.”
“내 말이 틀렸어? 마시고 안 마시고는 어디까지나 자유야 안 그래?”
잠시 말이 끊겼다.
“난 도무지 얘하고는 말을 못하겠다니까!”
이 한마디에 서로가 웃었다. 즐겁고 기뻤다. 이곳에는 머리 아픈 일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거나 머리를 단정하게 빗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점퍼도 좋고 러닝셔츠라도 좋은 것이다.
“덕배야! 미안해.”
“뭐가?”
이 야단법석 중에서도 얘기를 해야겠다며 의자를 끌고 와서 귀에다 입을 바싹 들이대고 말했다.
“나도 교회를 나가는지가 10년이 넘었거든. 그런데도 이렇게 술 담배를 다하고 있다니까.”
덕배는 웃었다.
“그렇지만 내 마누라는 말이야 철저하다구. 교회 목사님이나 장로들이 자주 우리 집에 온다구.”
“그럼 직분이 권사인가 보구나?”
“그렇지! 권사 중에서도 왕초지.”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