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특별한 기획전을 꾸렸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기사 중에 공감이 많이 되는 인터뷰 내용이 가슴을 다시 한번 여미게 한다. 이렇게 기록했다.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느냐”고, “어떤 힘으로 지금껏 버텨왔느냐”고. 혹시 눈치챘으려나. 이 질문에 진한 복선이 깔려 있다. 당신이 해온 일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안타깝지만 앞으론 그렇지 않으리라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다고. 과연 선뜻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몇몇 대답을 먼저 보자.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 들 때였다. 애써 말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작업밖에 없더라”,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또 작업이 잘되면 세상을 가진 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관두고 싶다가도 또 계속하기를 오래 반복하고 있다”, “언제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삶의 이유라 당연하게 이어가게 된다.”
이들은 모두 작가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저 어려운 질문은 이들 작가들에게 했던 거다.’
기사를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먹먹했던 글은 이런 글이었다.
‘작가 300여 명 중 절반이 팬데믹 거치며 작업 중단!’
얼마나 버거웠으면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그만뒀을까?
이런 버거움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불론 땅,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요단 저쪽에 갈릴리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B.C 732년 경 앗수르 제국의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점령하면서 갈릴리 부근 이스라엘 영토를 침공하였으며 그 땅의 거민들을 앗수르로 이송시켜 노예로 삼았다. 이 중 스불론 땅은 갈릴리 남쪽과 갈멜산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지명으로 사사 시대 이후로 정치적 중요성이 크지 않았으며 매우 소외된 지역이었다. 그리고 납달리 땅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서부터 헬몬산의 남쪽 경사면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서 북이스라엘 왕국의 최북단 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국경에 위치하여 외세의 침략이 빈번했다. 따라서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상황은 버거움과 좌절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사야는 선포한다. 그 땅이 영화롭게 되며, 빛이 비치며, 즐거움이 넘쳐나며,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다는 기쁜 소식을 예언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그 모든 답을 6절에 기록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아기에 대해 마 1:23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 1:21은 이 아들에 대해 더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사야가 자신 있게 선포하는 그 아들이 마태복음은 “예수”라고 증언하고 있다.
왜 예수인가? 예수의 이름에 답이 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은 성부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죄의 대가를 치러주신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하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 스불론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납달리 같은 형편이라 할지라도, 소외되고 고통이 엄습하고 좌절 속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에게 흑암이 사라진다. 소망이 생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눌렀던 버거운 삶에 무게가, 멍에가 사라진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멍에를 지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셨기 때문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소멸시켜 주신다. 전쟁을 없애시고 평화를 오게 하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명경근 목사
<김화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