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해,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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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연속성이지만 하나 둘 세는 해는 가고 온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 2023년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고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되돌릴 수도 없다. 

2023년도는 다사다난(多事多難)으로 얽힌 한해였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전쟁 기근 자연재해 그 어느 곳도 편한데 없는 한 해였다. 원인제공자는 언제나 사람이어서 근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 타락을 만나게 된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 즉 땅은 너도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7~18)

생명윤리와 자연질서를 파괴한 것도 사람이고 모든 오염의 주범도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새해,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것이다.(전 1:9) 그 뿐인가.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1~12) 두 구절은 절망 선언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겐 자구책도 없고 새 사람 되는 길도 없다. 그러나 바울은 새 사람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 5:17) 새롭게 거듭난 존재가 되는 정도는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선언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는 말씀이다.

새 사람이 되려면 첫째,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이란 죄에 얽매여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정도를 찾아야 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 벗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버려야 한다. 완전한 결별을 뜻한다.

그러나 아담을 넘어뜨린 사단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방어벽이 무너지면 마귀의 공격이 거세진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를 유념해야 한다.(엡 4:27) 틈새, 거기가 문제다. 마귀의 집요한 공격은 작은 틈새라도 도외시하지 않는다. 작은 틈새가 댐을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욕심 유혹 정욕 구습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정도로 가야 한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시제상 과거이다. 현재 어떻게 사느냐 미래 어떤 소망을 갖느냐 하는 것은 삶의 과제이다. 가롯 유다는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지키지 못한 탓으로 구원의 대열에서 제외당했다. 우린 예수를 믿고 다양한 직임까지 맡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도이탈의 과를 범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르지 않는다면 낙오자가 되고 만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걷는 것이 정도다.(히 12:2) 천성을 향해 길 떠난 기독교도는 다양한 유혹과 도전에 맞닥뜨리지만 만난을 무릅쓰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인간의 삶은 역사이래 숱한 도전으로 얽혀 나왔다. 어느 시대도 평평한 복락시대는 없었다. 우리 시대라고 예외이겠는가? 신앙의 정도는 바로 믿고 바로 사는 것이다. 정도 이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완주해야 한다. 바울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거쳐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완주자의 노래를 불렀다.(딤후 4:7~8) 문필가들은 글 끝에 마침표를 찍고 필을 놓을 때 희열을 느낀다. 알피니스트들은 알프스 정상에 오른 뒤 만세를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인생 삶에 종지부를 찍는 날 승리의 노래를 합창해야 한다. 그리고 무너진 댐을 수축하는 회복의 역사가 도처에서 일어나야 한다. 새 사람 답게 되고 살고 일하는 새해 되길 소망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눅 5:38)

박종순 목사

<증경총회장, 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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