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영으로 다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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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이 종식되면 이전과 같은 화려한 제4차 산업을 노래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코로나의 긴 꼬리가 인류를 슬프게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온통 ‘패닉’ 속에 갇히게 하고 아직도 인류는 완전한 백신과 치료제를 제시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세계적 ‘카오스’는 예견된 인재였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더 위험하고 중요한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굴복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퇴치하려는데 과학적 노력을 집중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열망은 종교를 만들고, 심성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문학을 발달시켰다. 코로나 이후시대는 이런 인간의 탐구가 속도를 내게 될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듯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이후시대를 영성시대라고 지목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이미 영성시대이며, 영성적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역사의 흐름을 확연하게 읽을 수가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최첨단과학 시대이다. 인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주창되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폭발적 발전을 제3차 산업혁명이라 하고,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한 기술의 혁신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 위에 구축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촉발되어, 수학적 방법론의 확장 적용으로 로봇공학,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기술, 양자 프로그래밍 등 여러 분야에서 발달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매일 진보하고 있다. 최근 우리가 흔히 듣는 AI, 로봇, 드론 등이 제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이다.

이런 최첨단과학 시대가 영성시대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인간은 결코 첨단과학에 만족할 수 없고, 과학 그 이상의 신비와 영성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첨단과학시대는 영성시대라는 또 다른 인류문화의 한 장르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두 분야, 최첨단과학과 영성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것이다.

영성시대의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누구나 생명을 얻는 영성이든 아니면 생명 파괴적 영성이든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성은 좋은 것이지만 상당히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는데 영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비율로 볼 때에 늘어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은 영성시대의 한 특징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고 반면에 영성에 대한 관심도 극대화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시대에는 이단과 사이비가 횡행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영성시대에 나타나는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미래 현상은 과학기술과 조직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영성시대에 교회가 건전한 영성을 사회에 제공하지 못하면 사회는 건전치 못한 영에 미혹되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미래인이 추구하는 영성의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에 건전한 영성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하며 사회에 영성을 제공할 능력을 항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독교 외에도 영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는 불교의 영성이 있으며, 이슬람은 이슬람의 영성이 있으며, 모든 신비종교가 영성이 있으며, 무당도 나름대로 영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비기독교적 영성과 다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 

헬라어의 사람이란 단어 ‘안트로포스’는 위를 향한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할 때에 인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참 인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고, 살아있는 영인 ‘생령’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삶의 영성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영성적 공동체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이며 삶의 영성이다. 기독교는 높은 도덕성을 늘 요구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도덕성은 삶의 영성이다. 영의 혼돈 속에 빠져 있는 영성시대의 교회는 바른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어나고 세워져야 한다.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교회, 우리 교단이 영으로 다시 깨어나고 세워져서 대한민국을 다시 바르게 세우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성희 목사

<증경총회장, 연동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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