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의심의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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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아주 쉽게, 별일 아닌 듯이 입줄에 올리고 산다. 그러면서도 늘 그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그런 인간 심리 때문에 복술가들이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서양 사람들은 점성가라고 하면서 여전히 그런 것들에 귀가 솔깃해진다.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네 민속을 초토화 시킨 일본인들이 그들 나라의 신사라는 성스러운 곳 마당의 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처럼 가득 매달아 놓은 쪽지들을 보면 기가 찬다. 

정말 미래를 알면 좋을까? 당신은 앞으로 1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좀 나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다음 달 몇일에 당신은 죽는다고 하면 그 사람이 현명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알게 돼서 고맙다고 하면서 행복해 할 수 있을까? 서양에서는 환자 본인에게 예측 가능한 여생을 알려주고 죽음에 대비한 준비를 시킨다는데 우리는 아직 환자가 받을 충격이 걱정돼서 가족들만 알고 속을 끓이면서 쉬쉬하고 지내는 게 통례다. 주님을 모르고 서성이는 세상 사람들 얘기다. 

하나님 자녀가 된 우리는 정말 저들과 정반대로 마음 편히 미래를 온전히 맡기고 살까? 그래야 하는데 그 경지에 들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당연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마음속에서 그런 것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 끊임없이 부딪치며 요동을 친다.

‘하나님 언제 불러가셔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곱게만 데려가 주시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먹구름에 휩싸인다. 혹시 어디 몹쓸 병이라도 생기는 것 아닐까,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든 일은 없을까? 헛된 생각 떨치라고 찬송가 구절이 가슴을 밀고 올라온다.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하늘 보좌 앞에 갈 영광의 그날이 내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면서도 가보지 않은 죽음의 길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다만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순종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싶다. 새해에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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