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공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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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쩐지 세련되어 보인다 했더니 역시 그랬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디자이너라면서요?”

승호가 알고 있기로는 디자이너도 그 범위가 좁지 않았기 떄문이었다.

“편집 디자이너에요.”

“편집이요?”

승호는 머리를 갸웃했다. 그것은 디자이너라면 으레 패션이려니 했던 짐작이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여성 직업으로는 좋은 직종이라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에요 선생님?”

“책이든 의상이든 간에 그 조화나 꾸밈을 주안점으로 해서 다룬다는 것은 가정주부로서 아주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머나 선생님은 참으로 이해가 깊으시네요.”

여인은 감탄했다. 분명히 겉치레로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승호는 웃음을 지으면서 사과주스를 쭉 들이켰다.

이때였다. 때마침 도시락장사가 왔다. 승호는 냉큼 도시락을 사서 사과주스에 대한 답례로 여인에게 주었다. 물건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값으로 친다면 그게 얼마나 되겠느냐만 그래도 그 때문에 입이 열리고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이다.

“선생님 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그러게요. 우산을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선생님 걱정마세요. 제 우산으로 차 타시는 데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 그러시겠어요? 참으로 준비성이 대단하시네요.”

여인은 웃었다. 칭찬이 좋아서였다. 이러자 다시금 승호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나부터라도 친절하게 남자들이 말을 해주면 싫지가 않은걸요,”

그렇다면 화난 사람처럼 사람들을 대해야만 옳단 말인가. 필요없는 말은 하지 말라니 어떻게 꼭 할 말만 하라는 것인가. 심심하면 농담도 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겐 허풍도 떨어 웃기기도 해야 숨통이 트이는 것이지…. 

눈익은 건물이 보였다. ‘엇! 벌써 다 왔나보네!’

순간 역에 도착하는 시간을 아내가 알고 있으니 혹시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걱정이 생겼다. 승호는 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동안에 자리를 말끔히 치우고 기다리고 있던 여인이 퍽이나 반가워했다.

“선생님! 제가 좀 생각을 잘못 했었나 봐요. 사모님이 우산들고 나오실지도 모르는데요.”

“아, 아 글쎄요.”

‘아 뭐 그러면 어떻습니까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하고 승호는 꼭 한마디를 했으면 싶었지만 그러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얼마나 다행이냐는 마음이 들었다.

‘역시 나보다는 한수 위의 여자군…’

열차가 멈추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 저! 같이 가도 괜찮을 건데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여인은 사람들 틈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날 형편없는 공처가라고 보았겠지?’

 승호는 계면쩍은 얼굴로 천천히 비를 맞으며 발길을 옮겼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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