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종교와 돈과 권력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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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과 종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협력하고 견제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 3자의 밀착으로 인한 견제 능력의 상실과 부패였다. 돈이 권력을 매수하고 권력이 종교를 시녀화할 때 생기는 피해는 막대하다. 권력은 돈 가진 자로부터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고 종교 집단을 앞세워 자신의 윤리를 정당화시키는 일을 한다. 

종교가 돈에 밀착되고 권력과 손을 잡았을 때 생기는 해악은 더 심각하다. 종교는 돈 있는 자의 부정을 눈감고 축복한 대가로 이권을 챙기며, 권력의 윤리를 정당화시켜주며 그 비호를 받는다. 종교는 부정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며 스스로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어진다. 한국교회는 돈과 권력에 대하여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옛날 예수님 시절 종교인이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권력화되어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으로 종교와 권력을 한 손에 쥐었고, 이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성전을 통하여 돈을 벌었다. 한국교회 안에 권력층이 존재하고, 교회를 장터로 만들어 돈을 챙기는 상황은 없을까?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습관적으로 해오는 잘못된 일들은 없는지 정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관습에 젖어서 부정을 청산하지 못하던 종교 권력층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채찍을 들고 분노하셨다. 이 성전을 헐어버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였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종교 권력층들은 주님의 부활로 심판을 받았지만, 중세 시대에 다시 모습을 바꾸어 교황을 중심으로 한 권력층으로 신성한 교회를 장터로 만들고 부정한 돈을 착복하였다. 그들의 권력이 무서워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때, 주님은 마틴 루터를 통하여 채찍을 들게 하셨다. 그는 보름스 제국회의에 끌려가 종교재판을 받을 때 황제와 교황의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였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개신교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가 다시 개혁 이전의 중세 교회로 돌아간 느낌이다. 오늘 주님께서 한국교회에 오신다면 다시 채찍을 드는 일은 없으실까? 이런 교회라면 차라리 헐어버리라고 분노하지 않으실까? 교회 권력층이 시장터로 만든 한국교회는 이대로 무너질까? 아니면 다시 개혁될 수 있을까?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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