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내 어머니 임종 : 세족•성찬식

Google+ LinkedIn Katalk +

내 어머니는 팔십이 넘도록 참 건강하게 사셨다. 평생 입원 한번 하신 적이 없고 환절기 감기 한번 크게 앓으신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소화가 안된다고 자꾸 소화제를 사탕 까시듯 드셨다. 산책을 나가셨다가 우리집이 몇동 몇호더라, 전화를 하시고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전화를 하셨다. 어느 날 방에 들어가시더니 짙게, 조금은 어지럽게 화장을 하고 나오셨다. 그러면서 “영모 아버지가 출장갔다 오신대”라며 화장을 하셨단다. 60년 전에 돌아가신 당신의 남편, 영모 아버지가. 나는 그 충격을 이길 수 없어서 내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통곡을 했다. 급히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에 치매란다. 이후 췌장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는데 치매기가 높아지셨다. 그때부터 나는 일과를 마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마을 산책을 나갔다. 어머니가 못 알아들으셔도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보고라도 하듯 신나게 들려 드렸다.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우리 아들 같은 착하고 멋진 아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칭찬을 하셨다. 

내 어머니가 위중하시어 다시 입원 시간을 기다리는 마지막 주일이었다. 내 어머니는 늘 앉으시던 예배당 그 자리에 앉아 그날따라 작은 눈을 크게도 뜨시고 아들 설교를 듣고 계셨다. 설교 후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 보니 어머니가 안 보였다. 옆으로 쓰러지셨고 젊은 집사들이 업고 병원으로 달렸단다. 그 예배가 내 어머니의 마지막 예배가 될 줄이야. 목사로서 많은 교인들의 임종을 지켜 본터라 내 어머니의 임종시간이 되었음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들이 모여 부교역자 몇 사람들과 함께 임종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내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예수님 곁으로 가서 편히 쉬세요. 어머니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어요. 엄마가 없는 세상은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엄마가 평생 기도하시고 축복하신대로 살아 볼게요”

그리고 우리 아들 내외, 딸 내외가 할머니 발을 씻겨 드리며 할머니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고백해 드렸다. 우리 내외는 망원동 처녀 목회지, 그리고 개척교회를 섬기느라 아이들 양육은 늘 할머니 몫이었으니 손주녀석들의 고백을 담은 눈물은 식구들의 가슴을 적시었다. 그리고 내 아내가 시어머니 손발을 씻겨드렸다. 

“내 친정 엄마에게 받은 사랑보다 어머니에게 저는 더 큰 사랑을 받았어요. 친정 엄마와 목욕탕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를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등 밀어드리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우리가 부부싸움을 해도 어머니는 아들 편이 아니라 항상 제 편이셨지요”

울며 눈물로 씻어드리는 아내의 세족식은 우리 모두의 눈물을 쏙쏙 다 빼놓았다. 물론 지난 60년 친구처럼, 애인처럼 함께 살아온 나도 어머니의 손발을 씻겨드렸다. 

그리고 우리 가족 평생 잊을 수 없는 성찬성례전으로 가진 어머니 임종예식이 있었다. 

“엄마, 이건 우리 예수님의 몸이야. 엄마, 이건 우리 예수님의 피야”

숟가락에 포도주를 붓고 빵을 녹여 천국 가시는 내 어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이것이 ‘내 어머니 임종예식’이었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