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기, 교회는 종교인 아닌 증인된 삶 살 것”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활동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 활동을 나는 선교라고 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일차적으로 교회는 교회가 선 그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주권을 이루기 위한 선교,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사명을 가지고 설립된 것이다.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때, 비로소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안된다. 교회의 구성원들 개개인이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서야 한다. 목회자는 물론 교인들이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면해야 한다.
1) 세상을 섬기는 자, 목사
예수님은 “나는 섬기려 왔다”(마 20:28)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섬기는 자’로 사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은 과연 섬기는 자의 자리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섬기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가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교역자들의 ‘소득세 면제’에 대한 것이다. 복지제도가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었던 과거의 열악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특별대우가 설득력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게다가 모든 직업은 ‘천직’ 이라고 말하면서 ‘교역자’라는 직분에만 특별대우를 고수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혜택을 동일하게 다 누리고 있다면 당연히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교역자가 노동자가 아니라 안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교회가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섬기는 자로 대중 앞에 서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과 삶이 그것을 드러낼 때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전해야 할 교회가 그것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정작 교역자들이 교회 밖 삶의 현장을 모르거나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밖 삶의 현장이 곧 교인들의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교회 밖과는 분리된 채로 살아가는 교역자들이 교인들의 삶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교인들의 삶의 현장을 이해하려면 우선 교역자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봐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자비량 목회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방을 가서, 설교단에서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진정으로 교인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경험을 통한 더불어 살기를 강력하게 선포할 수 있을 때, 교회는 종교인이 아닌 증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인들의 삶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귀한 방법은 신문을 읽는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신문이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는 신문의 모든 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삶의 배경 속에 놓인 교인들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그들을 가르칠 수 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선교 목회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대회MC에서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성갑식 총회 총무가 기독공보에 하나님의 선교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반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선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전히 ‘교회 키우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 신학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의 방증이다. 교회가 커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니 교회 중심, 목회 중심이 되고 마는 것이다.
몇해 전 연동교회 김형태 원로목사가 신문에 기고한 후배 목사들을 향한 애정 어린, 그러나 날카로운 권면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으며 참 목자됨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후배들이여, 다음의 유혹에서 이겨라 / 사명보다 직업을 우선하기 쉬운 유혹 / 세속적인 현실·실용주의에 빠지기 쉬운 유혹 / 교회를 교회 성장의 기관으로 취급하는 유혹 / 위선과 독선의 권위주의적인 행동 / 이성에 대한 유혹과 시험
2) 지역사회 선교의 책임자, 교인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인에게 일차적으로 같은 사명을 주셨다. 그 사명은 가정, 지역사회, 그리고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같은 지역에 사는 교우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지역사회의 문화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1960년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조상 때부터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점차 사라져서 주거지를 자주 옮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장 의식’이 희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하다. 더 이상 마음의 평안을 기원하며 교회를 섬기지 않고, 동네 교회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섬기게 된 것이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