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mo sapiens to homo symbious)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생태계에서 생명이 군집을 이루는 방식이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 경쟁(competition)이다. 비슷비슷한 개체들끼리 먹이를 두고 다투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둘째, 포식(predation)이다.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힘이 센 놈이 약한 놈 잡아먹고, 약한 놈은 잡아먹히는 걸 자연의 이치나 운명으로 여기며 사는 군집 내 상호작용의 방식이다.
셋째, 공생(symbiosis)이다. 라틴어 symbious(심비우스)이다.
숭실대 구미정 교수가 쓴 ‘호모 심비우스’라는 책을 보면 “소위 머리 좋다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분리와 단절, 지배와 복종의 세계관을 유포시켜 마침내 천지만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면, 이제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세계관은 연결과 소통, 공존과 연대의 그것이 아니겠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그런 세계를 꿈꾸며 열어갈 사람은 필경 더불어 삶의 지혜를 아는 신인류, 곧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여야 하리라.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 않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 군상들이 그야말로 홀연히 하늘의 은총을 입어 더불어 살 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이 지구는 얼마나 다른 세상이 될 것인가? 소유를 넘어 나눔으로, 지배를 넘어 섬김으로, 그렇게 세상의 흐름에 맞서 사는 새 사람, 호모 심비우스야말로 성서 기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에 담고자 했던 본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 속에 진정으로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은 호모 심비우스이다. 악어와 물새도 공생하지 않는가? 아프리카의 아카시아와 개미도 공생하지 않는가?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 공생하지 못한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포스트 팬데믹(post pandemic)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는 “박쥐, 사향고양이, 낙타 등이 우리에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그 동물들에게 먼저 다가가 동물들 생활을 방해한 인간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간들이 잘살고 있는 박쥐 서식지를 침범하고, 악어 고기, 얼룩말 고기 심지어 유인원 고기까지 파는 식당이 버젓이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병원균 숙주는 인류에게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심비우스는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논어 자로(子路) 편에 보면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화’(和)하는 사람이란다. 서로 다른 음이 겹쳐져 화음(和音)이 되고 조화(調和)를 이뤄내는 것처럼, 군자는 같지 않다고 해서 잘라내고 쳐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르지만 조화를 이뤄낼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에 소인은 ‘화’하지 못하는 사람이란다. 결국에는 다 같은 것인데도 자꾸만 다르다고 하고, 이편 저편을 가르면서 불화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소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의 복음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나라는 우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공생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남녀가 어찌 적이란 말인가? 노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부자와 가난한 자,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생해야 한다. 모든 피조 세계와 자연 만물이 공생해야 한다.
이정원 목사
<주하늘교회 위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