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아기의 발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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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을 때 그들은 이미 성숙한 남녀였다. 두 사람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곧이어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이다. 신생아를 이 땅에 처음 나오게 하셨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누가 이 어린애들을 키울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겠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예수처럼 아기로 태어났더라면 뱀의 유혹도 없었을 터이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어 세상은 훨씬 더 화평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나 할머니 품에 안기거나 유모차에 탄 갓난아기들, 하나같이 눈에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도록 예쁜 새생명들을 보면서 이런 공상에 잠겨본다. 

늙어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고 정답다. 함께 살아온 자연과 인간들을 다 두고 언젠가 홀로 떠나가야 한다는 서글픈 마음이 있는데다, 나이가 늘면서 사물과 생명의 가치를 아는 지혜도 늘어나 마치 전문가가 귀한 미술품을 감상하듯 꽃과 나무, 산과 하늘을 더 깊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른들에 대하여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게 되고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의 부류가 더 많이 기억에 쌓이는 것에 반해, 새생명이 사랑스러움은 아기들의 조그만 이목구비로부터 그들의 100퍼센트 영적 순수성을 감지하고 그 순간 찬미의 마음이 벅차오르기 때문이다. ‘요놈 봐라’하고 나도 모르게 경탄의 소리가 나올 때 옆에 선 부모의 자랑스런 얼굴을 보라!

아기들이 더 예뻐 보이는 데는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하는 엄중한 사실에서 오는 안타까움이 크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것이 이젠 애써 고개를 뻗는다. 머리숱이 많든지 적든지, 눈이 크든지 작든지, 방긋이 웃든지 세상 떠나라고 울어 제치든지 모두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볼을 꼭 찍어보고 꽃봉오리 같이 움켜 쥔 손을 잡아보고 싶어 다가가다 멈추기도 한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오직 양육과 교육에 들 비용과 수고로움이 두려워서 출산을 기피하게 됐다고 사회는 진단하는데 과연 맞는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난 몇 해 동안 300조 원에 달하는 돈을 풀고 프랑스 같은 외국의 사례를 따라하며 애를 쓰는데 효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단 물질의 풍요가 빈부격차를 늘이고 이것이 인구감소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회정책가들의 담론일 뿐 역사적, 과학적 근거는 박약하다. 다른 측면에서 남녀간의 감정의 고갈 즉 성적 퇴화를 이유로 드는 것은 어떻게든 현상에 때려 맞추려는 억지로 들린다. 

출산율의 문제도 거시경제의 경기변동 현상처럼 인간행동의 자연적 사이클은 바닥을 치면 다시 오르게 마련이라 믿는다. 여기서 우리는 성급하고 초조한 생각을 거두고 담담히 원대한 낙관론을 펼쳐볼 필요가 있다. 이제 반등의 시대가 오고 사회는 균형을 되찾으리라. 

인구문제의 해답은 엄마품에 안긴 아기의 발간 볼에 들어있다. 안고 뽀뽀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한 해결의 날이 오리라. 그리고 그에 앞서 인간의 중추신경에 자리하도록 하나님이 부어주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근본적인 이성애에 해결의 키가 들어있음을 먼저 살아온 우리는 장담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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