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105주년 삼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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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월1일은 삼일운동 105주년이다. 1919년3월1일 우리는 대한 독립의 염원을 담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제 치하 최대의 독립운동인 당시의 외침은 도시에서 지방으로, 한반도에서 중국 대륙으로 다시 바다 건너 미국으로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단지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열망을 넘어 국제사회에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또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미년(1919년) 3월 1일 정오에 서울을 비롯한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지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의 취지를 밝히고 일본 경찰에 자수했으며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만세 시위는 온 나라로 확산되어 5월까지 계속되었는데 전국에서 집회가 1천542회 열렸고 참가인원은 2,02만3천89명, 사망 7천509명, 부상 1만5천961명, 피검 5만2천700명에 불탄 교회가 47개 교회, 불탄 학교가 2개교, 불탄 민가가 715호였다. 손병희, 최린 등 천도교 측 인사들과 이승훈 등 평안도 기독교계 인사들이 독립 선언을 계획하고 불교계 한용운 등이 참여해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3개 교단이 독립운동의 주축을 이루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은 종교별로 볼 때 기독교인(16명), 천도교(15명), 불교인(2명)이었으며 그들을 연령별로 보면 60대가 2명, 50대가 15명, 40대가 11명, 30대가 5명이었다. 시위의 중심은 학생과 지식인에서 일반 민중 시위로 전국화되었고 뒤이어 노동자, 농민, 상인들까지로 확대되었다. 만주, 간도, 연해주 일대에서도 만세 시위가 벌어졌고 중국언론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상하이 국민일보는 3.1~5.4(54운동)까지 20회 이상 보도했고 베이징 Daily Xlews(영문지)도 매일 보도했다. 미국의 New York Times는 1919.3.20.부터 보도를 시작했고 AP통신은 1919.3~1920.12월 사이에 한국 관련 기사를 8천 회 이상 보도했다. 미국의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삼일운동을 국제문제로 인식시켰다. 임시정부수립을 통해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변화됐고, 신민(臣民)에서 국민(國民)으로 개혁됐으며, ‘평화적’ 시위였지만, ‘혁명적 효과’를 냈다. ‘신분 제도’에서 ‘민족의 일치단결’로 ‘의병 의열단 투쟁’에서 ‘임시정부의 군대 투쟁’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105년 전에 삼일 운동역사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삿2:20)가 되지 않도록 역사교육을 철저히 그리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水所以戴舟, 亦所以覆舟(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다시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순자/왕제편)는 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민초(백성)들은 물 같고 풀 같아서 연약해 보이지만 항상 잘못된 정권이나 지도자를 바꾸고 갈아 치우는 일을 정확히 해왔다. 한비자에는 “天網恢恢, 疎而不漏(하늘의 그물은 크고 엉성하지만 잘못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는 가르침이 있고 “若人 作不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만일 사람으로서 선하지 못한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낸 자는 비록 어떤 사람이 그를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인다.)”(莊子/周易)고 돼 있다. 이 말을 기억하자.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1902.3.15.-1920.9.28.)의 유언이다. “우리가 세운 목적이 그른 것이라면 언제든지 실패할 것이요, 우리가 세운 목적이 옳은 것이라면 언제든지 성공할 것이다.” (도산, 安昌浩) 삼일운동의 5대 정신은 ①자주독립 정신, ②자유 발전 정신, ③만국 평화 정신, ④만민 평등 정신, ⑤인류 공생 정신이다. “恥心之禮一端, 廉恥之心, 人間本分(부끄러운 마음이 예의의 시작이요, 염치를 아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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