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절제된 언어훈련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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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부시절,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 1903-1977) 박사의 특강을 청강할 기회가 있었다. 다음은 당시 양 박사로부터 직접 들은 인상 깊은 일화이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 선생이 1914년 약관 23세의 나이로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이듬해인 1915년 계동에 있는 중앙중학교를 인수하고 1917년 중앙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1920년 동아일보를 창립하여 30세에 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다시 1932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普成專門)을 인수하여 크게 발전시키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인촌이 ‘중앙중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인촌이 어린 시절, 그를 양자로 맞아 들여 그를 교육시킨 그의 백부 원파(圓坡) 김기중(金祺中, 1859-1933) 선생의 비석을 중앙중학교 뒤뜰에 세우기로 하고 그 계획이 신문에 발표되었다 한다. 사계(斯界)의 권위 있는 학자들 사이에는 과연 그 비문(碑文)의 제작을 누구에게 의뢰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심사였다. 

혹자는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 선생을 지목하는가 하면 혹자는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 1903-1977) 선생을 예상하였으며, 혹자는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선생에게 비중을 두고 점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한다. 이들 중에 무애와 노산은 동갑내기였으며 춘원은 이들보다 10여 년 선배가 되므로 무애 양주동 선생은 십중팔구, 춘원에게 낙점이 되리라 예견했었다 한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은 이는 ‘춘원’도, ‘무애’도 아닌 ‘노산’이었다. 노산은 비문을 완성하여 예의적인 차원에서 먼저 가까운 친구인 무애에게 찾아가 자신이 쓴 비문을 내밀며 자문을 구하였다. 무애가 노산이 지은 비문을 읽고 또 읽어 보았으나 어디 한 군데도 허점이 없었다. 결국 무애는 노산의 노고를 치하한 후, 헤어졌는데 노산은 다시 같은 원고를 들고 역시 자문 요청 차, 춘원을 찾아가니 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붉은 연필을 집어 들고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스승은 철종(哲宗) 10년 기미(己未) 정월 이십오일에 나시어 일흔 다섯 해를 누리시고 계유(癸酉) 칠월 이십 구일에 여히실새… [중략] …전북 줄포의 영신학교와 서울로는 중앙중학교 및 보성전문학교를 세우고 또 맡으시어…”

노산의 작품을 한참동안 읽고 또 읽던 춘원은 이윽고 붉은 연필로 ‘중앙중학교’ 앞에 지시관형사 ‘이(this)’자(字) 한 자를 첨가하여 ‘이 중앙중학교’가 되게 하였다. 이를 바라보던 노산이 의아하여 지시관형사 한 글자를 첨부하는 이유를 묻자, 춘원은 ‘중앙중학교’ 앞에 관형사 ‘이’ 자가 들어감으로써 그 동상이 ‘종로 네거리’나 ‘남산’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요, ‘중앙중학교 교내’에 세워짐을 뜻하는 것이라고 답을 하니 후에 노산의 전언(傳言)을 듣고 무애와 노산은 “역시 춘원!”이라고 감탄을 하였다 한다. 나는 대학 4학년이던 1965년 봄,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중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갔다가 학교본관 뒤뜰에 세워져 있는 「원파선생의 비문」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짤막한 말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찔러 감동시킨다”는 뜻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거니와 옛 어른들은 간단한 ‘말 한 마디’로도 깊은 뜻을 나타냈던 것을 보게 된다. 이분들보다 불과 한 두 세대 뒤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만 헤프게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도 절제하지 못하고 너무도 남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겐 ‘절제된 언어훈련’이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혹시 마음속에 노여움이 일어날 때에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고 절제된 언어를 표출할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 다윗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망명자의 신세가 되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탄원시(歎願詩)가 시편 34편의 내용이다. 견디기 힘든 흥분 상태에서도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입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음을 본다. 

‘절제된 언어’에는 ‘감정의 절제’, ‘어휘의 절제’, ‘수사법의 절제’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특히 ‘지도자’나 ‘가르치는 사람’의 언어는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인 덕목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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