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이동진료를 나간다. 이동진료는 적어도 이틀 거리 정도는 되어야지 의미가 있다.
하루 거리는 환자들이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떠나면 밤에 도착하는 곳, 대략 열 시간 이상 걸어서 가는 곳을 찾아간다.
적십자회나 동네 청년회 같은 그룹을 통해 그만한 거리에 이동진료를 갈만한 지역을 물색해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신이 나서 정보를 알아 온다. 지역이 정해지면 보통 간호사 두 명하고 나하고 동네 사람 대여섯 명이 팀이 되어 간다.
좀 쉬어가면서 하면 좋지만 도착한 다음 날 진료를 해야 하기에 쉴 틈이 없다. 간혹 가다 이틀 진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하루밖에 진료할 시간이 없다. 산을 두 개씩 넘어 다시 급하게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동진료를 가면 하루에 수백 명의 환자가 오기도 한다. 일반 병원에서는 도저히 진료가 불가능한 숫자이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경험이 쌓이면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긴다. 내 경험으로는 정말 아파서 오는 사람보다 그저 호기심에 약 하나라도 얻어볼까 싶어 오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나는 임시 진료실로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아, 저 사람은 가짜 환자로구나’ 하고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결과는 역시 거의 틀리지 않는다.
“어디가 아파요?”
그러면 머리가 아프다느니 허리가 아프다느니 하면서 이런저런 엄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 손은 벌써 처방전을 쓰고 있다. “비타민, 구충제.”
그런 식으로 하면 한 사람에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100명에서 200명이 넘어가면 처방전 쓰는 팔도 아프다. 금세 피곤이 몰려온다.
너무 피곤하면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나서, 죽은 듯이 짧고 깊은 낮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진짜 환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간혹 본인은 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단순히 약 좀 얻어볼까 하고 왔다가 뜻밖에 큰 병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다시 찾아가기가 어려우니 가능한 대로 약을 넉넉히 준다.
약을 통해서라도 완전히 낫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진짜 환자를 본 다음이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건강한데, 바로 앞의 환자가 말한 것과 똑같은 증상을 말하는 것이다. 진짜 환자 뒤에 섰던 가짜 환자가 앞의 환자에게 물어본 것이 틀림없다.
“어이, 도대체 어디가 아프다고 했기에 그렇게 약을 많이 받은 거야?”
물론 나는 모르는 척하고 다 들어준다. 처방전에는 이미 비타민과 구충제를 써놓긴 하지만.
나는 이동진료를 다니면서 약간의 진료비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진료비를 받으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의사의 가치를 이해할 것이고, 진짜 환자에게 진료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진료비 명목으로 적게나마 돈을 받으면서 환자가 걸러졌다. 아무나 무조건 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픈 사람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돌았다.
“저 한국 의사가 이 산골까지 와서 우리 돈을 받아 뭘 하려는가?”
그래서 진료가 끝나는 날, 동행한 목사님에게 염소를 잡고 저녁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바나나 잎 접시에 음식을 담아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마을 대표에게 진료비로 받은 돈 전부를 건네며 마을을 위해 써달라고 전달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박수를 치면서 크게 기뻐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적은 진료비조차 내지 못해 이동진료에도 오지 못하는 환자가 있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병에 걸린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죽어도 좋으니 선생님이 여기에서 치료해주세요”라고 막무가내로 요청할 때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위대한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기도하면 놀라운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났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바랄 수 없는 데서도 바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길이 보이지 않고 빛이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의 형통한 길을 갖고 계시며, 내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