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26, 149:4, 로마서 12:16)
나는 대학생 시절에 기독 학생들과 함께 당시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유는 고 김용기 장로님의 검소한 사상과 정신을 배우고 본받기 위해서였다. 30여 명이 함께 금요일 오후부터 주일 낮까지의 일정으로 계획을 하고 그분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그분의 신앙철학과 일상생활에 대한 말씀이었다. 먼저 예배를 드리고 첫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를 꿇어앉혀 놓고 한 시간 반 동안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는 그야말로 소박하고 검소하였다. 보리쌀 반 흰쌀 반의 밥인 데다 그릇 안에 찰까 말까 하는 정도의 양이었고, 반찬은 야채국에 소박한 단무지와 김치가 전부였다. 김용기 장로님은 절대로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놓지 말라고 했고, 식사를 남기면 큰 죄라고 하셨다. 그 훈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밤에 도망을 갔고, 인내한 사람은 정해진 시간까지 강의를 듣고 훈련을 받았다. 그분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과식해도 안 되고, 버려도 안 되고, 음식을 탐해도 안 되고, 반찬도 세 가지 이상 담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훌륭한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장로님의 아들은 당시에 신설동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왕래하며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검소한 모습과 농촌운동에 헌신한 공적으로 1966년에 제1회 막사이사이상을 받으셨고, 그 후에 어느 학교의 장한 상을 받으셨고, 그런 연관성으로 나는 가나안농군학교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곳에서 생산한 것을 정성껏 보내 주고 있다.
나는 그때 배운 소박한 장로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소박하게 살아가려고 힘쓰고 있다. 김용기 장로님처럼 소박한 식탁, 검소한 생활로 낮은 곳에 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다. 검소한 삶의 습관은 장로님한테서도 배웠지만, 거지 생활에서도 배웠다. 그때의 생활과 비교하면 지금 비록 검소하게 살지만 내 집이 궁궐같이 생각된다.
나는 1989년에 독일에서 4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독일인과 국제결혼을 한 가정에 초대 받아서 간 적이 있다. 그들은 군인 가정이었는데, 저녁 초대에 갔을 때 식탁에 올라온 것이라고는 빵 네 조각, 소시지 몇 조각, 약간의 치즈와 오이 몇 조각, 커피가 전부였다. 너무나도 소박하고 검소했다. 일본에 가서 일본인 가정에도 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일본인 가정은 독일인 가정보다 더 소박했다. 된장국 한 공기와 작은 공기에 흰밥과 노란 무 두 조각이었다. 우리나라는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김용기 장로님이나 독일이나 일본으로부터 소박하고 검소한 점을 배워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강조하기를 “나는 소박한 생활에 매력을 느낀다. 단순한 생활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나치에게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후 프린스턴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죽는 날까지 이론 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그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휴머니즘 사상가였다.
현대 사회의 생활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고, 사회는 거인처럼 우리를 압도하려고 한다. 역사는 격동 속에 달리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현대인은 정신의 평화와 안식을 잃고 살아간다.
우리는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 가식적인 것보다는 소박한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너무나 복잡한 생활은 공연히 우리의 심신을 피곤하게 만든다. 인간들이 도시보다 농촌, 문명보다 자연에 마음이 자꾸 끌리는 것은 소박과 단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어 갈수록 점점 더 소박과 단순의 위대한 가치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위, 성공, 재산, 명예의 노예가 되기 쉽다. 또 이런 것이 자기의 분에 넘칠 때 인간의 자유와 독립에 장애가 되기 쉽다.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 149:4),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 22:26)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구원하심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롬 12:16)라고 하며,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낮은 데 두는 겸손한 마음, 소박한 마음을 가지라고 교훈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겸손하고 소박하게 사셨다. 새벽에 이슬을 맞으며 들에서 산에서 기도하셨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제자들과 전도하러 다니며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을 만큼 소박한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웃고 책잡으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소박한 삶을 사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이 소박한 삶, 겸손한 삶을 배워야 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