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수없이 만나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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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중에 우리는 수없이 예수님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소자에게 네가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곱씹어 보면 아주 작은 일을 네게 행한 것도 나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갑자기 눈이 쏟아진 날 집 앞 길이 미끄러워 주춤거리고 있는데 한 청년이 와서 부축해 경사 길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준 일, 며칠 전 책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데 무리하게 많이 실어 작은 휴대용 손수레를 밀기 어려울 때 고비마다 누군가가 와서 힘든 길을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때 그분들이 바로 예수님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많은 세월을 사는 동안 어느 소자에게 베풀어 본 적이 있는가? 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잘 가르쳐주는 정도의 일이 남에게 베푼 호의라 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시간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 지하도에서 노숙자 차림의 사람이 가까이 오면 혹여 부딪칠까 염려되어 얼른 옆으로 비켜서기 바빴지, 그들에게 호의를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길에 사람이 누워 있으면 비켜 가기 바빴지, 그를 살펴서 도와줄 마음을 갖지 않았다. 행여 골치 아픈 일에 걸려들까봐 얼른 그 자리를 모면하기에 바빴다.

젊은 시절까지는 봉사활동 등에 잘 참여했지만 이제 그것조차 옛일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또 듣건만 실행에 옮긴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싶어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이 고작이다. 길을 갈 때도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곧잘 양보하곤 했는데 요즘은 나도 힘들고 늙었다는 유세(?)로 그마저 무신경이니 소자로 앞에 오시는 예수님을 수없이 만나면서도 홀대하는 불경을 다반사로 하고 사는 셈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힘들어 보이는 분에게 흔쾌히 양보하자, 계단을 오르내릴 때 손잡이를 붙드는 일도 조금 양보하며 비켜주자, 노인석도 더 불편해 보이는 분에게 양보하자, 속으로 주문을 외워보지만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나니 구제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수없이 손잡아 주시고 도와주시는 일을 계속하신다. 다치지 않도록 발길을 붙잡아 주시고 실수하지 않도록 주야로 지키신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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