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리더가 된다는 건 참 두렵고도 떨리는 일이다. 잘 감당했을 땐 보람과 상급이 크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길을 갔을 땐 하나님 앞에서의 책망과 심판도 크기 때문이다. 나는 COVID-19 팬데믹 긴 터널 끝자락,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총회와 한국 교회를 섬기라는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의 음성, 교회 내외적인 목소리들이 크고도 선명하게 들렸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그리고 바르게’ 살아보라고 하셨다.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올바른 일을 바르게 감당하라고 하셨다. 교회 안에서는 절망하는 교회에 희망의 길, 희망의 빛을 만들어 달라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교회 밖에서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서 달라, 정의 편에 서 달라,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라, 번영 신앙과 성공주의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공적 교회, 공공의 선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쌓아놓은 숙제 더미처럼 밀려오는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기도하던 중 많이도 묵상한 말씀이 거창고등학교 정신이었다. 세간에 ‘직업 선택 10계명’으로 기억되는 내용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이 10계명이 없었다. 아마 설립자 전영창 선생님의 훈화 속에서 제자들이 찾아내 정리한 정신, 그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내 책이나 설교 중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직업 선택 10계명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월급이 아니라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 생계가 아니라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내 마음의 요구를 이겨내는 사람만이 진리를 따라 살 수가 있는 법이다.
셋째,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하나님의 일은 보상이 아니라 일 자체에 가장 큰 기쁨이 있는 것이다.
넷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개척, 도전, 모험은 좁은 길이지만 결국 큰길을 만날 수가 있다.
다섯째, 앞다투어 모이는 곳은 피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세상 물결 따라 흘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물결을 거슬러 살아보라는 것이다.
여섯째, 장래성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하다면 나라도 가보는 것이다.
일곱째,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말고 존경의 대상이 돼라. 모두 큰 교회 목사님 부러워는 하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시대는 존경받는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고 있다.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왕관이 아니라 십자가와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열째, 가족이나 배우자가 반대하면 틀림없다. 그곳으로 가라.
참 근사하고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 이처럼 사는 것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부터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러나 총회장으로, 대표회장으로, 이사장으로 리더가 되어 사는 동안 이 정신을 붙들고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했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삶의 자국들, 메시지들을 두란노 출판사가 하나하나 모아 AI가 정리하듯 반복, 중복을 피하고 순서를 따라 정리하여 낸 책이 ‘꺾이지 않는 사명’이다. 물론 이 책의 제목도 두란노가 발견하고 정리한 제목이다. 처음 이 책의 원고를 읽고 내가 정한 원제는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였다.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보라! 꺾이지 않는 사명자가 돼라!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