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본격적으로 유대인을 연구하기 위해 우선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책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은 유대인들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곧 유대인의 규범이 되어 있는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유대인을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란 유대교의 승려이며 때로는 교사이고 때로는 재판관이고 때로 부모이기도 한 존재이다. 탈무드는 단순히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학문이다. 이 1만 2천쪽의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구전을 10년에 걸쳐 2천 명의 학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현대의 우리들도 지배하고 있으므로 말하자면 유대 5천 년의 지혜이며, 온갖 정보의 저수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탈무드는 법전은 아니지만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책은 아니지만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명 사전은 아니지만 많은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백과사전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며 인간의 위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5천 년에 걸친 유대인의 지적재산, 정신적 자양이 탈무드에 들어 있다. 참된 의미에서 탁월한 문헌이며 크고 빛나는 문화의 모자이크다. 서양문명의 근본적인 문화양식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무드를 읽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탈무드의 원류는 구약성서이며, 구약성서를 보강하고 더 나아가 구약성서를 확장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탈무드가 책으로 쓰여지기 전에는 구전으로 랍비에게서 제자에게 전해져 왔다. 탈무드는 읽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연구하는 것이다. 사고능력 혹은 정신을 단련시키는데 있어 이것만큼 좋은 책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탈무드는 유대인의 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이산(離散)의 역사를 보내온 유대민족의 유대감을 결속시켜 주는 것은 탈무드 뿐이다. 오늘날에는 모든 유대인이 다 탈무드에서 정신적 자양분을 취하고 거기에서 생활의 규범을 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유대인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유대인이 탈무드를 지켜 왔다고 하기보다는 탈무드가 유대인을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다. 탈무드는 본래 위대한 연구, 위대한 학문, 위대한 고전 연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탈무드가 아무리 위대한 책이라 해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같은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발 한 발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독자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계의 위인들 수백 명을 한 곳에 모아 놓고 토론을 벌이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위대한 그 인물들이 수백 시간에 걸쳐서 토론한 내용을 녹음했다고 하자. 그것은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 탈무드는 거기에 필적할 만큼의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위대한 인물들이 1천년 동안 이야기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혜의 샘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를 아름다운 계절에 1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