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하는 오래된 어구 중 하나는 ‘선교적 상상력’이라는 말이다. 시력을 잃어버리고 난 후 나는 내게 주실 은혜를 상상하며 살았다. 상상한다는 것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바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마음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수많은 꿈을 꾸고 마음으로 바라며 소망하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의 힘을 넘어 상상의 힘을 믿기 시작한 것은 나섬과 몽골학교를 건축하고 역파송 선교사들을 보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내게 상상하는 힘은 믿음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주님의 은혜다. 나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기도하며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하나님은 내게 은혜를 주셨고, 오늘의 몽골학교와 나섬의 모든 사역을 허락하셨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하게 하셨다. 이제 나는 더 큰 상상을 한다. 나는 그것을 ‘선교적 상상력’ 때로는 ‘창조적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통일 선교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됐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나의 몽골 비전에 대해 처음 듣는 분들이었다. 몽골 평화경제공동체의 비전과 가능성에 대해 강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나의 제안을 매우 창조적인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히브리서 11장의 앞부분이다.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서술은 매우 명확하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것이며,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언제나 고개를 끄떡거린다. 맞다! 믿음이 갖는 힘이 내가 오늘 꿈꾸는 상상력이다. 선교적 상상력이든, 창조적 상상력이든 꿈을 꾸는 자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꿈꾸는 자 요셉을 하나님께서 후일 애굽의 총리로 이끌어가셨듯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상상하는 자유가 자유의 시작이다. 내 마음과 영혼이 상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을 소망하며 기도하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지혜와 용기를 구하며 오늘까지 살아왔다. 눈이 안 보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살아야 했음에도 상상하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한 힘이었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슴으로 상상하며 바라는 일은 내 육신의 아픔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매일 상상을 한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내 일상이다. 나는 그것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꿈꾼다. 몽골 평화경제공동체도 실체는 없지만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