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Ethics)에서 가정이 국가에 선행해야 한다고 했고, ‘정치학’(Politics)에서는 국가가 가정보다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중용의 관점에서 가정과 국가의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서양 중세 가톨릭교회는 기독교를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한가운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가 있었다. 그의 아우구스티니아니즘(Augustinianism)은 계시가 이성보다 선행해야 한다는 신학사상이었다. 그런 사상은 장기간의 십자군 전쟁(1096~1270)을 거치면서 기독교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보려는 사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이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이다. 그 사상의 대표자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이다. 그의 중심 사상은 계시와 이성의 조화로운 인식이고, 그런 이해 속에서의 신앙생활이 성숙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다.
17세기 청교도혁명과 절대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권력 구조와 주권재민 문제에 첨예하게 대립하던 대표적인 정치 사상가는 영국의 홉스(Thomas Hobbes)와 로크(John Locke)이다. 전자는 ‘리바이어던’(Liviathan)에서 인간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이기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계약에 의해 국민의 주권을 군주에게 위임한 기간 동안에는 국민이 간섭하지 말고 군주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에서 정부는 오직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사회계약에 의해 세워진 군주라고 하더라도 중대한 과오가 있을 때에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 하에 혁명을 통해서라도 절대군주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양자의 통치론은 그 나름대로 모두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고 혼란을 거듭하는 사회상황에서는 소신 있는 지도자를 세워 집단적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홉스의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안정된 민주 의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로크의 이론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여튼 시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앙시앵 레짐(Old Regime)의 구체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지롱드파(Girondins)는 자유를, 자코뱅파(Jacobins)는 평등을 강조했다. 이 논쟁은 후에 우익의 헤겔리즘(Hegelism), 좌익의 맑시즘(Marxism)의 역사적 갈등 배경의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은 결국 조화와 균형의 시각에서 볼 때, 조화롭게 공존하고 동행해야 할 문제이지 별개의 문제로 투쟁과 적대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배에 중점을 둘 것인가 성장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하면서 분배적 정의를 조화롭게 유지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독일의 근대 역사학의 대가 랑케(Leopold von Ranke)는 개체를 자유, 전체를 필연으로 보고, 개체는 전체와 밀접하게 상호 연관성을 가질 때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개체와 전체가 조화와 균형의 틀 속에서 상호 발전돼야 개체와 전체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날은 고학력시대이다. 지적능력을 갖춘 고학력자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직한 영적(靈的) 능력 없이 부정직한 지능(知能)만 발달된 지성인(知性人)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는 언젠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성(知性)과 영성(靈性)을 조화롭게 갖춘 균형 잡힌 인간상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