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에 모두들 말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칭찬한다. 하지만 말은 좀 잘 못해도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절대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에 겪게 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것이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성경을 읽으면서부터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큰 복을 받지만 그 말씀을 듣지 않으면 징계를 받고 시험에 빠지게 된다. 심판의 칼날을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을 성경은 밝히 전하고 있다. 구약을 보면 순종의 역사보다 불순종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아니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에 무섭고 떨리는 것이다. 귀가 얇아 남의 말을 무분별하게 잘 들어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지만, 그것보다는 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구성원들의 고견에 귀를 닫았다가 낭패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그것은 때로 엄청난 비극으로까지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상숭배의 버릇을 못 버려서 진멸 당하는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내가 너를 구원하고 복 주리라는 말씀보다 눈앞에 보이는 우상에 매달려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면 과하다 할지 모르나 그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우리 우상은 금상이나 신상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많다. 돈, 명예, 권력, 자식, 취미, 약물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그 근본은 인간의 교만에서 출발한다. 하나님 말씀을 우위에 놓지 못하고 내 생각이나 판단이 옳다고 여기는 확신이 그 주범이다. 이것이 바로 교만임을 성경은 열심히 가르치고 계시건만 인간은 여전히 오불관언이다. 읽지만 그것은 글자를 읽을 뿐인 것이다. 예수님이 참다못해 불쌍한 우리를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고난의 길을 걸으셨는데, 교만을 내려놓게 해 주시라는 기도라도 열심히 드리는 변화를 겪었으면 좋겠다. 작심삼일 말고 진정으로 내 눈의 들보를 빼고 겸손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변모를 체험하는 복을 바란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