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종로3가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무심히 창밖을 보는데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은 빨강 재킷에 짧은 흰색 치마를 입고 진한 화장과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차림이었다. 그분은 혼자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두 분은 웃으며 금방 친해진 듯하더니 잠시 후 팔짱을 끼고는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순간 관련한 노인 성 문제 기사들이 머리를 스쳤다.
작년 9월 원주의 70대 노인이 버스정류장에서 13세 여아에게 “이쁘다, 몇 학년이니”라고 말을 걸며 허벅지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장 이달만 해도 충북 청주에서 73세 할아버지가 10대 아동을 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노인들의 성범죄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노인요양보호센터를 운영하는 한 원장은 필자에게 센터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성문제와 성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노인의 아동 성추행 등 큰 사건들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터지면서, 노인의 성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인의 성 문제는 대부분 ‘노인이 주책 맞게’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보다 터부시하며 처벌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노인일지라도 인간의 3대 욕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더욱이 식욕과 수면 욕구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지만 성욕은 상대가 필요한 욕구로서, 이 욕구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품위 있는 노인으로 살기 어렵다.
지금의 노인들은 대부분 성장기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에 대한 인식과 고민을 거치지 못한 채 가정을 이루고 살다 어느 날 긴 노년을 맞게 된다. 몸은 70세가 넘어도 마음은 여전히 청년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고, 나이가 들수록 통제력이나 절제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특히 교회 노인성도들은 평생을 성경과 신앙교육으로 훈련되어 사회적인 도덕과 윤리적 관점에서는 절제하며 살아왔다. 그간 교회 내에서 성의 문제는 개방되어 토론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 탓에 건강한 욕망이 숨겨지고 억눌린 경험을 겪기도 하고, 쉬쉬하는 문화 가운데 범죄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노인성도들은 평생 교회 내에서 절제만 해오다 욕구와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인간의 욕구를 어떻게 승화시키며 신앙의 품위를 잃지 않고 아름답고 고결하게 늙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신앙적 성교육이 필요하다.
민감하고 쉽지 않은 성교육은 특성상 제도화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더욱이 노년의 성교육은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없다. 교회는 노년의 성도들이 성의 문제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히려 교회는 성도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에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부끄러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노년의 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손자녀들에게도 제대로 된 가이드를 할 수 있도록 신앙 안에서의 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 교회는 그간 성의 문제에는 늘 방관자였다. 이제는 더 이상 눈감고 외면으로 일관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노년이 품위 있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인을 위한 성교육에 교회가 앞장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채은 목사
<사랑교회, 前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