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서울에서 10여 년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겼다. 목회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하던 중, 어느 날 주님이 음성을 들려주셨다.
“다 내려놓아라. 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순종하며 교회를 사임했다.
아직 한 곳도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수도권 신도시 지역을 돌며 기도했다. “하나님, 어디로 갈까요?” 그때 남양주 별내 신도시에 감동을 주셨다. 가진 것도 후원도 없었다.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조직도 관계도 끊어져 홀로 남겨진 광야였다. 그때 비로소 책 속에서의 눈물이 아닌 삶 속에서의 눈물을 배웠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O Lord, Have a mercy!)”
3년 후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서 엘리야가 바라본 조각구름처럼 아파트에서 가족이 첫 예배를 드렸다.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목회 1막이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었다면, 2막은 주님이 열어주시는 비전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이다. 주님의 이끄심이 더 복되기 때문이다.
교회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기도하던 중 아내가 지금 사는 이곳이 별사랑마을이니 ‘별사랑교회’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다들 문학적이고 시적이라고 하면서 좋아한다. “별내와 열방을 사랑하는 교회, 별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교회, 별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교회.”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사람들이다. 구약시대에는 땅(place)이 신학적 관심사였다면, 신약시대를 사는 오늘날은 사람(person)이다. 장소가 어디든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그 곳이 교회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아닌가? 그 후 수년간 아파트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어학원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노마드(nomad, 유목민) 교회로 모였다.
당장 교회 안의 열매와 정착보다 현장에서 씨뿌리기와 관계 맺기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자 지역축구팀 활동, 아파트 통장, 경로당 예배 인도, sns에 ‘행복나라’ 주제로 글도 올렸다.
언젠가 새벽 1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축구회 한 회원이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횡설수설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이 저를 별내에 보내신 이유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아, 주님이 이 영혼을 위해 나를 보내셨구나!”
지금도 주민을 교인으로 삼고, 마을을 교회로 삼으며, 개교회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목양을 하고 있다. 나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신동윤 목사
<별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