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한문으로 발표하였다. 번역하면 “본인은 오늘의 개화된 문명을 알지 못했다가 비로소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성령의 인도로 세례를 받아, 겨우 기독교의 대도를 전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성경을 떠나서는 내 의견을 조금이라도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요 14:10)고 하였습니다. 또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요 14: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뜻은 실로 오묘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믿음에 이르는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이 뜻을 크게 생각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뜻을 열심히 연구하는 중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영감의 이치를 말씀한 것이며, 믿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확증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비유로 아버지는 포도원의 주인이요, 자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포도나무 비유는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 몸 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감 관계도, 마치 등불의 심지가 불타지 아니하면 빛이 없는 것과 같이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감을 받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형식상의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신앙이 없으면 성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종을 칠 때 울리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종과 망치가 있더라도 그저 늘어놓아서는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망치로 종을 쳐야 소리가 납니다. 이제 크게 구하면 크게 얻을 것이며, 적게 구하면 적게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해서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삼위일체를 믿으면 자기 몸도 삼위 하나님과 합하여 일체가 되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 몸 안에 임재해 계시면 나도 하나님의 몸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일거일동과 나의 언어와 침묵 속에 임재해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 구원의 확실성을 알려면 자신이 그런 상태 속에 있는지 살펴보는 데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임을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설혹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리스도나 성령이 계심을 믿으면 사죄함을 얻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라고 봅니다. 또한 성령의 힘으로 마귀의 유혹과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은총이라 하는데 하나님의 이 은총이 없으면 불교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불교는 하늘까지 사닥다리를 놓고 이것을 기어올라 그곳까지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기독교가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한국 기독교 전래사, pp. 279-283)
이와 같이 성경을 토대로 전개시킨 그의 순수한 신앙고백은 읽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기독교 잡지 <로쿠고 잡지(六合雜誌)> 제34호(1883년 5월호)에 실렸다. 내용은 첫째, 그의 신앙유형은 체험적 신비주의적 경건이라고 했다. 둘째, 천주교가 ‘불씨 지별 파’로 이해되었으나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파악함으로 불교를 극복했다. 셋째, 그에게서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넷째, 그의 신앙고백의 한계점은 당대의 개화파들에게서 드러나는 기독교를 개화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성경을 학문적 새로운 지식의 원천으로 대하는 측면을 가졌을 뿐 아니라 동시에 동양적 사고의 틀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신앙고백은 문서로 남아 있고 한국의 최초의 신앙고백으로서 신앙이 한국인의 심성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사례이다. 그의 신앙고백은 당시 개화파 지식인이 가졌던 동양적인 토양에 기독교의 복음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려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