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70여 년 전인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아직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우리나라를 북괴가 전격적으로 남침해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일방적인 전세로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다. 다행히 UN군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극적인 역전극을 벌여 석 달 만에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뜻하지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의 전세가 역전되면서 통한의 1·4후퇴를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3년간에 걸친 끔찍한 내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히 공산군의 잔인함을 깨달은 국민들이 예전에는 미처 피난하지도 못했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이 공산치하를 벗어나는 요행을 얻었음은 다행한 일이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맞아 흥남부두에서 최후로 퇴각하는 미국전함에 타기를 원하는 수많은 피난민들을 무리하게 승선시킨 미군의 배려는 눈물 나게 고마운 처사였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인 생명 구출 작전의 하나인 흥남철수작전이 일어났다. 이때 미군의 마지막 철수를 알게 된 수많은 피난민들이 흥남부두로 밀려와 군함에 승선하려고 하였고, 당시 10만 미군과 탱크를 비롯한 각종 중화기차량과 엄청난 군수물자를 운송해야 하는 미군으로서는 수많은 피난민을 수용할 수 없었지만, 과감하게 많은 물자를 파기하고 또한 침수의 위험도 각오하고 10만 명의 피난민을 구출했다. 이때의 대 탈출극은 정말 성탄절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여길 수 있는 쾌거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3천리 금수강산을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던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피치 못할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결과적으로 종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현상이 이어지면서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이 됐다.
나는 휴전 후 수도 서울 환도에 맞추어 1953년 10월에 서울로 왔다. 그때 둘러본 서울은 어디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완전한 폐허였다. 그런데 다행스러우면서 놀라운 일은 그런 폐허 앞에서 땅을 치고 통곡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숙연하고 체념에 찬 모습을 보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마음속으로 결연하게 이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하는 듯 보였다. 결국은 안 되면 될 때까지 다시 하는 열성과 끈기로 하루하루 재건의 삽자루를 잡고 복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세계인이 놀랄 정도의 빠른 기간에 경이로운 찬사를 받으며 이제는 선진국의 대열에 발돋음 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에 내려진 어려움은 코로나로 인한 질병이다. 예전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재앙이 밀어닥친 것이다. 대처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숨 쉴 사이 없이 큰 재앙이 오는 것이 꼭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격」이 되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 각자가 알아서 대비를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도시가 황량해졌고 상가들이 겉은 멀쩡하게 남았는데 알맹이가 모두 빠진 듯 썰렁하게 비어가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도 어렵다고 정신을 놓고 넋마저 잃을 수가 없으니,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근성과 노력의 정신을 다잡아 결코 낙담하지 않는 투지로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 한 번의 기적을 창조할 수 있기를 노력하는 새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