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거지들에게는 사계절 중에서 여름이 제일 좋고 편안한 철이다. 여름에 대해 어느 철인이 “땅은 나의 푸근한 매트리스이고 하늘은 나의 따뜻한 이불이라”고 말한 것처럼, 배부르고 편히 잘 수 있는 곳이 많아 따뜻한 안방과 같이 마음이 편해지는 계절이다.
공동묘지에서 여유 있는 집의 무덤 앞에는,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만들어 놓은 묘지 상석이 있다. 상석은 넓고 평평하여 누워 자기에 편하고 좋다. 여름엔 시원하고 좋은 잠자리 중에 하나이기에 거지들은 떼를 지어 묘지 상석에 가서 잠을 자곤 했다. 혼자는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지만, 여럿이 모여서 자면 비록 묘지 앞일지라도 든든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과수원에 있는 오두막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잠자리 중에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거지들은 따스한 봄철, 그리고 햇볕이 따뜻한 10월 가을철도 좋아한다. 왜냐하면 춥지 않아서 어디서 자도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밖에서 자야 하는 거지들에게 추운 겨울은 가장 싫은 계절이다. 밖에서 자면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리기 쉽고, 너무 추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거지들은 집 밖으로 나와 있는 아궁이나 굴뚝을 찾아가 발을 대고 자는 것을 최고의 잠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인들이 장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노점 가판대도 최고의 잠자리였다. 밤이면 상인들이 노점 가판대를 덮어 놓은 비닐이나 천막을 들추고 안에 들어가서 자거나 가판대 사이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가판대와 비닐이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에 허허벌판보다는 좋았다. 또는 가을 추수가 끝나고 쌓아 놓은 논밭의 볏짚단 속도 거지들이 좋아하는 잠자리였다.
하지만 추위를 피해 찾아간 따뜻한 아궁이와 노점 가판대와 볏짚단이 바람을 막아 준다고 해도, 북풍한설 한겨울에는 몸이 얼고 손발이 얼었다. 겨울 동안 경험했던 그 추위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지게로 물건을 나르는 노인이 “몸을 녹일 수 있고 배부르게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이 한 곳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자갈치 시장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자갈치 시장은 아침 일찍이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콩죽, 팥죽을 팔고 국밥이나 국수도 파는 곳이었다. 지게꾼 노인은 그곳에 가면 무엇이든 얻어먹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 거지들은 그의 말대로 2-3명씩 짝을 지어서 자갈치 시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시장 밥집에 가서 깡통을 내밀고 경상도 사투리로 “밥 좀 주이소” 하면 어떤 사람은 욕설을 퍼부으며 “아침부터 개시도 안 했는데 봉사(시각장애인)가 와서 밥을 달라 하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냉대를 했다. 그러나 욕을 먹었기 때문에 그냥 물러설 수가 없어서 줄 때까지 서 있었다.
거지들이 가게 앞에 서 있으면 손님들이 밥 먹으러 오지 않는다. 그러면 할 수 없이 거지들에게 밥을 주면서 얼른 먹고 비켜나라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였다. 욕을 들었지만 따뜻한 국밥이나 국수를 먹고 나면 얼었던 몸이 녹고 살 것 같았다.
이렇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주머니는 “어서 오너라.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하면서 따뜻한 국밥을 깡통 가득히 퍼 주었다.
그리고 “먹고 더 묵거라!” 하면서 “이건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 앞으로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축복의 말까지 해 주었다.
그때 국밥을 주면서 축복과 힘을 주던 아주머니의 따뜻한 말을 돌이켜 떠올려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마 그분은 잘 모르긴 해도 예수를 잘 믿는 교회 집사님이나 권사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른 밥집 아주머니들은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데, 먹고 또 오라고, 내일도 오라고 해 준 그분의 말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얼었던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 주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