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하면서 이용하는 비행기에는 의례 지정 좌석이 있으며 가격에 따라 그 자리가 구별되어 있기에, 비싼 자리는 자연히 넓고 편안한 좌석이지만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다만 미국항공기에서는 일반적으로 군인이 예복을 들고 탑승하면 승무원이 입구에서 이를 받아 자신들의 소지품을 보관하는 옷장에 넣었다가 내릴 때에 다시 손님에게 전해주는 특별한 대접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 평소에 군인들에게 보여주는 존경심이 마음 짜릿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도 교회에 오면 앉는 자리가 정해지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나도 예배를 드리려 교회에 가면 매번 같은 자리에 앉는데 한번은 내가 즐겨 앉는 자리에 잘 모르는 사람이 먼저 앉아 있기에 그 뒤에 슬그머니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후부터는 30분 전에 미리 자리에 앉아 준비하는 습관을 들여, 이제는 예배시간에 지각은커녕 매우 일찍이 참여하는 열성 신도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어떤 모임에 참석할 때 앉는 자리에 신경을 쓰던 습관이 평소에 우리가 세상에서 출세하면 ‘한자리 했다’고 일컬어지는 말이 생겨났다고 느껴진다.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의 쏠버 대학 강당에서 당시의 석학인 라비스 박사가 근속 50주년 축하연을 하게 되었다. 식순에 따라 답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라비스 박사는 축하객 중에 레몽 푸앵카레 프랑스 대통령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그에게로 향했다. 미처 그의 참석을 알지 못했던 그는 대통령을 내빈석으로 안내하려 했으나, “선생님,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대통령이 아닌, 선생님 제자로서 축하하기 위해서 왔기에 이 졸업생 자리로 만족합니다”라며 사양했다. 이에 단상에 오른 라비스 박사는 “저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저런 대통령을 모셨으니 프랑스는 더욱 부강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해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가 흔히 어떤 모임에 가면 돋보이는 자리에 앉으려 하거나 축사라도 하려고 넌지시 선을 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가 오히려 모욕을 당하는 경우를 목도하기도 한다. 겸손함이 없이 위대함이나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모르기에 일어나는 무지함이라 여길 수 있겠다. 겸손은 단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숙이는 것이라는 진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인정하는 것이 겸손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겸손에 대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적절한 비유이다.「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비록 남을 밀치고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갖추면 이것이 곧 남에게 대접받는 자세임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