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아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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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쥐가 나이가 들어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면 뒷방 신세가 된다. 움직이는 것도 불편한 원로 쥐는 젊은 쥐들이 먹이를 갖다주는 것으로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뒷방을 차지하고 또 젊은이에게 짐이 되는 늙은 쥐를 왜 젊은 쥐들은 마지막까지 공양을 하는가? 나이 들면서 쌓여진 지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젊은 쥐들은 활동력이 좋고 먹이를 빨리 물어다 나를 수도 있다. 하지만 원로 쥐가 살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동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 지체 없이 모든 식구를 데리고 피난을 떠난다.

즉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기 전 이를 감지한 원로 쥐는 민족대이동의 명령을 내려 종족을 보존하는 일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조금 많이 먹고 적게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종족의 존폐가 기로에 있을 때 원로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추운 겨울에 어떻게 쥐들이 월동을 하는가 궁금하다. 어느 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니 아주 추운 겨울 굴 안도 추위가 엄습할 경우 가운데 원로 쥐를 중심으로 동심원으로 쥐들이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보호하고 있는 장면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바깥쪽은 젊고 건강한 쥐가 있고 맨 안쪽에 원로 쥐가 있는 모습은 우리 인간사회가 배워야 할 바를 바로 가르쳐 주는 그림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곳곳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오며 귀감이 되는 분들이 계신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한원주 원장님의 삶을 보면 저서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의 제목같이 마지막까지 진료하며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통해 후학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같은 삶의 밑바탕은 부친이 의사로 의료봉사를 하며 지내셨고 교사이신 어머님이 해방되던 날 일장기에 태극기를 그려 게양하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농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애국가를 불렀다는 이야기는 독립운동가의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보면 노장의 지휘자가 혼신을 다해 지휘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같은 곡을 수없이 들었다고 하여도 나이들어 음악을 들으면 또 새로운 느낌과 해석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솟아날 것이다. 원숙함이 묻어나오는 그 지휘와 리더십으로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내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농인 사회는 어떠한가? 농인 사회의 원로를 꼽으라고 하면 김기창 화백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복지 법인을 설립하여 현재는 청음복지관을 비롯하여 공방 등 몇 개의 기관을 가진 단체로 성장해 있다.

그 외에 농인으로 농사회에 원로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들을 거론하기가 쉽지 않다. 농인으로 사회에서 일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반증해 주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학계나 종교계 교육계 체육계 등에도 이제는 제법 적지 않은 수의 농인들이 진출해 있다. 그들이 이만큼 각계에 진출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일반인들의 진출에 비해 몇 배나 더 힘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진출한 농아계의 리더십을 가진 분들을 농사회는 잘 응원하여 그 사회에서 성장하여 자리잡도록 힘을 모야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가 농인 국회의원이 배출되고 수어가 뉴질랜드 공용어의 하나로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룩해 낸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농아계에도 이제는 존경받고 덕망있는 원로의 역할을 할 분을 배출해야 될 시기가 되었다. 학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신망 받는 농인지도자가 나와 원로로 가기까지 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농인 사회의 위상과 그들의 문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꽃피워 나갈 수 있는 길이 해를 거듭할수록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 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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