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깃도는 요한계시록의 미래 아마겟돈(Armageddon)의 전쟁터
므깃도는 전쟁터로도 유명하지만, 성서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자료와 유물이 발굴되어 더 유명하다. 이곳에 3,000년 전에 건축된 수로시설, 므깃도 박물관과 솔로몬의 삼중 문과 계단, 도시의 북쪽문(솔로몬 당시의 궁전과 성막과 성소), 여로보암 시대의 곡물 저장소, 솔로몬의 지휘소와 마병장, 다윗왕 시대의 건물과 병거와 야합왕의 마구간 등이 있다.
기원전 4000년으로부터 6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최고의 요새로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도시이다. 므깃도는 이집트와 다메섹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해변의 길’의 가장 중요한 통로로서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할 수 있는 곳이어서 20회 이상의 국제 전쟁을 치렀던 곳이다. 이 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면에 부조된 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인데, 그는 기원전 1468년에 므깃도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왕이었다.
므깃도는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되지 못할 만큼 강한 가나안의 요새였으며(삿 1:27-28), 다윗에게 정복된 것으로 여겨진다. 솔로몬에 이르러 므깃도는 견고하게 수축되어 가장 강력한 북방요새가 되었다. (왕상 9:15-19) 솔로몬이 세운 마병장과 기병대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군사적 상황을 반영해 주며, 주요 도로를 장악하여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므깃도는 기원전 923년에 이집트의 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아합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기원전 609년에 요시야 왕은 이곳에서 이집트의 느고 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왕하 23:28-30) 그 후 폐허로 남게 되었다. 1917년 영국의 알렌비가 터키군을 패퇴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므깃도에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였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와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솔로몬 시대의 성문은 그 이전의 구조와 다른 자형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맞는 성문을 고안해 낸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곳에서 발굴된 마병장에는 말들의 고삐를 매어 놓았던 구멍이 뚫린 돌들이 말구유와 함께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굴하였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 왕 때의 주거 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왕 때의 것이다.(기원전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 때 복구되었지만, 아합 왕 때의 마구간은 그 이전 솔로몬 때에 건설된 것을 재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수한 수로 장치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밖의 샘으로부터 므깃도 내부로 물을 끌어들였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결정적인 전쟁터로서의 므깃도의 역사는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 있다. 즉 ‘역사의 종국에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이 이 아마겟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하여, 므깃도는 이 아마겟돈이 아닌가 하고 성경 학자들은 추론한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므깃도가 헬라어로 음역 되어 ‘아마겟돈’으로 등장하는데,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표현된 것(계 16:16)은 우연이 아니다. 므깃도가 아마겟돈 전쟁이 유래된 곳이므로 요한계시록 16:16에 묘사된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왕들이 모여 일으키는 마지막 전쟁이 아마겟돈이다.
므깃도 요새에 거주하던 무장 군인들과 군마들을 위한 거대한 곡식창고도 신기할 정도로 원형 그대로 발굴되었다. 가장자리에 놓인 계단을 따라 아래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곡식창고를 뒤로하고 강력한 요새에서 오랫동안 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되는 대규모 물저장고도 장관을 이룬다. 순례객마다 북쪽 므깃도 전시실에서 입장하여 같은 길을 되돌아갈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 엄청난 유수지의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발밑에서 찰랑거리는 물을 모세가 홍해를 갈래 낸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통과하여 반대편 남쪽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새로운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 므깃도의 수장고는 마치 선사시대의 거대한 동굴을 탐조하는 것과 같은 짜릿한 경험뿐만 아니라, 이스르엘 계곡의 무더운 날씨에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어 순례객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므깃도 유적지 정상에 올라가면, 산 정상이 두 동강이 나서 파헤쳐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처음 이곳을 발굴한 군인이 다이나마이트로 한순간에 유적지를 두 동강을 내서 발굴하였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찌 유적지를 이런 식으로 발굴하는가? 그런데 거대한 텔의 겹겹이 쌓인 지층이 한꺼번에 드러나자 모든 고고학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바로 여기서 여로보암의 인장도 출토되고 각종 드라빔도 발굴되어, 거대한 텔 므깃도가 가나안 정복 이후 시대에 왕성하던 우상숭배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므깃도를 찾는 순례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전시실이다. 전시실에 므깃도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텔 므깃도 조형물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솔로몬 시대부터 요시야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단층 구조와 유적지의 건축물이 신기하게도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