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아침묵상] “그의 형상대로 온유하고 부드러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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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 4장 9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성내는 것이 언제나 혹은 반드시 죄는 아닙니다. 다만 화는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네가 성냄이 합당하냐?”라고 자문하여 우리가 내는 그 화의 성격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는 미치광이의 횃불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엘리야의 불일 때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선과 자비로운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하는 잘못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면서도 화를 내는 사람은 그 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영혼이라면 누구든지 죄를 참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시 97:10)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노는 칭찬할 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당치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때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대해 “안 돼”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며, 아랫사람들에게 성질을 부리고, 동료들에게 격노합니까? 이런 분노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에 전혀 합당치 않습니다. 십자가로 나아가 주께 우리의 분노를 못 박고 그의 형상대로 온유하고 부드러운 자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출애굽기 20장 25절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제단은 인간의 기술이나 수고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못하도록 다듬지 않은 돌로 세워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육신의 지혜는 복음을 향상시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보정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수정하고 변경하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데 자기도 한몫 거들고 싶어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연장들을 하나님 제단 위에 올려놓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육신적인 자신감은 구세주의 사역을 완전케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고 불명예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대속 사역에서는 주님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무엇을 보태려 애쓰거나 주 여호와께서 흡족해 하신 것을 더 낫게 만들려고 애쓰는 일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장들을 저리 치우고 겸손히 무릎 꿇고 간청하십시오. 우리가 발견한 그대로의 진리를 받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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