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86) 존 데이비슨 록펠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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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미국의 사업가이며 대부호였다. 1870년 스탠더드 오일을 창립, 석유사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2010년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 모빌도 그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1839년 뉴욕 주 리치퍼드에서 순회 약품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1853년 가족을 따라 오하이오 주로 이주했다. 가난해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16세 때 클리블랜드 농산물 중개상에서 하루 50센트 받는 점원이 되었다. 얼마 후 자신의 중개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첫 직장에서 헌신적이었으므로 고용주는 놀라고 또 기뻐했다. 그 소년이 매일 밤 자기 방에서 하루의 일을 되새기고 자신에게 훈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용주는 더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조심해야 해 자만심에 빠지면 실패하기 쉽다. 서둘러서 잘 되는 일은 없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광맥이 터졌다. 록펠러는 유전보다는 정유소의 전망이 더 밝다고 생각하여 1862년에 앤드류스, 클라크와 함께 정유 회사를 설립했다.
록펠러가 많은 돈을 축적한데는 행운일 수도 있으나 그는 돈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록펠러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국에서 막대한 부와 산업이 만들어지던 때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도금시대>(1873)에서 ‘부자들이 거들먹거리는 시대’라고 묘사하였다. 그 시기의 부자들로 벤더빌트, 굴드, 피스크를 들 수 있다.
1861년 4월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사상 최악의 날벼락이었지만 그런 혼란의 시기에도 한몫을 톡톡히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록펠러는 동업자와 함께 세운 클라크 앤드 록펠러 사에 군수물자인 소금과 돼지고기 주문이 쇄도하면서 더 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종자돈을 모았다.
그 무렵 미국은 곳곳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산업이 붐을 이루었다. 석유에서 ‘미래’를 발견한 록펠러는 정유소 운영 등의 경험을 거쳐 1863년에는 동업자 클라크 앤드류스와 함께 정유공장을 운영했다. 이 공장은 클리블랜드 최대의 정유공장으로 하루 500배럴의 정유능력을 갖고 있었다.
1870년 스탠더드 오일 사를 세우고 뛰어난 경영으로 미국 최대의 정유회사로 키웠다.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하여 석유업의 독점적 지배를 확립했으나 반 트러스트 법위반으로 1899년 트러스트를 해산하였다.
후에 뉴저지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했으나 1911년 미국 대법원에 의해 해산을 명령받고 은퇴했다.
확장시대에 편승하여 록펠러는 자신의 모든 돈과 에너지로 사업을 키웠다. 바로 이 회사가 훗날 미국의 석유생산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스탠더드 오일 사의 원조이다. 석유산업의 발전에는 철도의 힘이 컸다.
록펠러는 철도회사에 뇌물을 주므로 경쟁사의 석유 운송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런 편법 때문에 록펠러는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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