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윤리의 기본에는 공사(公私) 구분을 분명히 할 것이 들어 있다. 공적인 예산과 인력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개인의 이익보다 다수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공사(公私)를 구분함으로 윤리 체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사(公私) 구분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공사(公私)의 구분이 잘못 오용되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진리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진리는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여지며, 사적인 영역에서의 진리에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 개인의 신념까지의 모든 영역을 다 포함한다.
기독교 신앙을 사적 영역에 국한시킴으로써 미국에서조차 공립학교에서는 기도나 성경읽기가 금지되었고 모든 공공기관에서는 당연히 신앙적인 행사가 금지되었다.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축하 인사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도시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잊고 있는 사실은 ‘진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는 모든 영역에서 진리이어야 하며 진리는 어떤 영역에서도 진리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는 개개인의 느낌과 의견까지 진리처럼 절대적 권위를 받아들이며 객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입법을 추진하는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의 중심에 있는 성별의 정의에 포함된 ‘분류될 수 없는 성’이라는 것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과 느낌을 공적 영역에서까지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한편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는 개개인이 마음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느낌 정도로 여긴다. 공사(公私) 구분의 대혼란에 빠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실정은 참담하다. 기독교 신앙 전파를 목적으로 세워진 사립학교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사립학교이기 이전에 ‘학교’이기에 공적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립’이라면 어떤 기관이든지 ‘공공’을 붙여 바꾸고 싶은 이념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것 같다. 국가는 가정,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등 각 영역이 서로 충돌되어 문제가 발생할 때 공적 이익을 위해 각 영역에 개입할 수는 있으나 각 영역의 자유까지 침해할 권리는 없다.
이는 세계적인 칼빈주의 학자이자 네덜란드의 수장을 역임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의 기초이다. 공적 영역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으려면 사적 영역에 침범하거나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바꿈으로 가능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사(公私) 구분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