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낮은 곳이라고 머무르지 않고 더 낮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머무르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계속해서 흐른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성도들은 은혜의 물줄기가 되어 머무름이 없이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다.
‘낮은 곳으로’라는 말은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안에 있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세 가지 흐름을 거스르는 말이다.
첫째는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높이려는 권력에 대한 흐름을 거스르고, 둘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차별하여 분열하려는 흐름을 거스르고, 셋째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기득권만을 지키려는 흐름을 거스른다.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흐름은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낮은 곳으로’라고 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니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높아지려는 흐름 속에 젖어 있고 그러한 높아지려는 마음에 물들어 있다. 낮은 곳이란 원래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이다. 겸손이란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낮은 곳으로 가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스스로 가는 것이다.
낮은 곳은 겸손의 자리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낮은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모두 하늘 아래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C.S. Lewis는 말하기를 “밑만 쳐다보는 사람은 위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 볼 수 없다”고 했다. 낮은 곳으로 간다는 말이 성취나 성공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문적인 탁월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자신의 확신을 버리라는 뜻도 아니다. 어떤 성취나 성공도 우리 자신이 높은 자라는 것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짜 많이 알면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래 낮은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umility와 굴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umiliation은 같은 라틴어 Humilitas에서 나왔다. 같은 단어에서 겸손이란 단어도 나오고 굴욕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면 겸손(Humility)이 되고,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지 않아 수치스럽게 억지로 나아가면 굴욕(Humiliation)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하셨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자리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겸손으로 승리하신 것이다. 고난이 깊을 수록 예수님의 겸손은 더 밝게 빛난 것이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십자가의 희생이 있다. 그보다 더 낮은 곳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사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길밖에 없다.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