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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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은 주전 270년대 최초로 희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70인역’이 번역된 계기와 과정을 자기 동생에게 쓴 편지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이것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정확한 자료인가 하는데 관해서는 학계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70인역’에 관한 고대의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이집트의 왕 토레미 2세(Ptolemy II, 주전 285-247)가 선왕이 건립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당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으로 시작된다. 도서관장 데메트리우스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유대인들의 율법서(Lawbook of the Jews, 구약의 ‘5경’을 의미한다)를 희랍어로 번역해서, 도서관에 소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한다. 왕은 좋은 생각이라고 흔쾌히 승낙하고, 왕의 서신을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 엘리아살에게 보낸다. 왕의 서신을 갖고 간 두 명의 사신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편지의 필자 아리스테아스이다.

서신의 내용은 ‘유대인 율법서’를 희랍어로 번역할 사람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대제사장 엘리아살은 왕의 요청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경건하며 희랍어에 능통한 장로를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발해서, 모두 72명을 보낸다. 72명의 장로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을 때, 왕은 기뻐하며 7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환대한다. 환영 잔치가 끝난 후, 72명의 장로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섬으로 가서 그곳의 훌륭한 시설에서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분야를 나누어 번역하고, 번역한 것을 서로 감수하며 일을 진행한 결과, 꼭 72일 만에 모든 번역 작업을 마쳤다. 토레미 왕과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는 번역의 완성을 기뻐했고, 이후로는 이 번역을 수정하거나 가감해서는 안되는 권위 있는 번역으로 최종 승인했다. 번역을 마친 72 장로들은 왕이 하사하는 푸짐한 선물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개요이다. 이 자료에 의거해서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정확히는 72인이 번역했지만), 번역 작업은 주전 200년대 전반부 토레미 2세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定說)이 되었다.

그러나 이 ‘편지’ 내용의 역사적 정확성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이 번역 작업이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토레미 2세의 주도와 전폭적인 후원 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과장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당시 번성하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 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유대인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는 국제교역이나 상업활동으로 크게 성공한 부유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는 모두 잊어버리고 당시 국제공용어인 희랍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희랍어 번역 작업을 할 수 있는 인적,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70인역’ 희랍어 번역이 나오자 모든 유대인들은 크게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새로운 문제도 생겨났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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