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21)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정부에서는 유해를 대전 현충원에 모시면서 안장식(8. 18)을 거창하게 거행했다. 대통령도 참석해서 축사를 하면서 그를 대단한 인물로 칭송했다. 조상들이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잘 모시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너무한다는 비판여론이 많았다. 살아있는 영웅은 천대하면서 죽은 사람에 대해 극진히 모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군다나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후 독립운동 인사들을 핍박하고 처형에 앞장섰던 사람을 어떻게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는가. 당시에 국민적 비판여론이 많았다.
엄격히 말하면 홍범도는 존경받아야할 독립군이 아니다. 공산주의자이다. 1920년 일제 침략기에 만주에서 의병으로 독립군활동을 시작했지만 변절하여 독립군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1920년 6월 독립군으로서 봉오동전투에서 승리하고, 10월에는 김좌진 장군과 합세하여 청산리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 후 독립군 활동을 중지하고 러시아로 피신해 들어갔다.
당시 독립군이나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무기나 자금지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러시아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대립관계에 있었으므로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면서 그들을 러시아의 수하에 두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하에 들어오면 이들을 공산당에 가입시키는 것이 필수였다.
이 무렵 홍범도는 일본군의 만주토벌을 피해 1921년 러시아로 피신해 들어갔다. 그리고 레닌에게 포섭되어 공산당원이 됐다. 그리고 일군에게 쫓기는 독립군들을 러시아로 불러들여 피신처를 제공하는 한편 공산당가입을 종용했다. 소련공산당에 입당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반대하는 사람은 소련군의 숙청의 대상이 됐다. 대략 4,800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유명한 ‘자유시참변사건’(1921. 6)이다. 그 중심에 홍범도가 있었고 그의 역할이 컸다. 즉 홍범도는 독립군을 소련공산당원이 되도록 유도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또한 독립군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극진히 모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크게 잘못된 처사다.
홍범도가 소련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은 그의 활약상과 사진을 통해서도 증거로 남아있다.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사진을 찍은 사실도 드러났다. 완전히 공산주의자가 되어 반민족적 활동을 했는데 현 정부는 ‘이념이 같다’고 그를 환대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까지 했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뿐 아니라 정부에서는 북한 인민군 창설에 공이 큰 김원웅을 국가유공자로 추대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때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했다는 이유로 남침의 원흉인 인민군 장군을 국가유공자로 추대한 것이다. 북한에서 해야 할 일을 우리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정부를 공산당 정부라고 비꼬는 것이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로 지난해 11월 고 전두환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가족장으로 모셨으며, 국립묘지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했다. 결국 본인의 뜻에 따라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최전방에 모시기 위해 지금 연희동 자택에 유해를 머물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72년 전, 북한공산군의 남침으로 전 국토가 침략군의 수중에 넘어가 패망하기 직전 나라를 구한 호국영웅 백선엽 장군이 100세에 서거했을 때도(2020. 7) 청와대에서는 조문은 커녕 애도의 뜻을 표하는 성명서 한마디도 없었다. 안타깝게 생각한 민간 애국단체에서 추모행사와 함께 서거 1주년을 기해 그를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원수’로 추서하는 국민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상이다. 적군에 대해서는 환대하고 국가안보에 공이 큰 애국자들에 대해서는 냉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사인가?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역대 주한 미군사령관들은 백선엽 장군을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두고 존경해왔다. 서거 후에도 매년 추모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베트남 선교협회 회장